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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능력 설교의 능력 [제 636호]
   조회수 649
2021-10-25 20:53:08


 


강단에서 행하는 말씀 선포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원인은 말의 가치가 저하되었기 때문이다. 설교는 설교자가 20-30분 동안 떠드는 아무 소용없는 말이라는 시각이 많다. 강단은 말을 하는 곳이다. 무수한 말이 강단에서 회중석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회중의 삶은 그대로다. 강단에서 하는 종교적인 말은 힘든 상황에 있는 일부 영혼에게 진정 효과가 있으나 실제적인 변화는 없다.

히브리어로 말(world)을 의미하는 다바르(dabar)에는 사건(event)이라는 의미가 있다. 말이 사건이기 때문에 성경은 무익한 말을 경고한다(12:36). 말이 사건이라는 이 믿기 어려운 사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실행하는 에너지가 표출되었던 구약 성경의 개념에서 기인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심으로 사건이 일어난다.

말은 창조적이다. 좋은 설교는 언제나 괜찮은 논리 구조에 살을 붙여서 완성되는데, 설교자는 일반적인 논리 구조에서 벗어나도 괜찮다. 문법과 논리 규칙이 과거와 현재의 상태를 정의한다면 설교를 포함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쪽으로 힘차게 움직인다. 또한 말에는 무언가를 환기하는 능력이 있다. 무언가를 존재하게 하고 낡은 것을 바꾸며 기존의 것을 무효화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 말은 어둠 가운데 빛을 내고 눈물 가운데 기쁨을 일으킨다.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을 입었다는 성경의 증거는 무궁무진하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그 이후에 어떻게 하시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한다. 빛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자 어둠 가운데 빛이 생겼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하나님은 물 가운데 궁창을 두어 궁창 위와 아래의 물로 나누시고 땅을 만드셨다. 하나님이 땅에게 식물을 만들라고 하시자 나무가 생겼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현실로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를 또는 무엇을 향했을까? 하나님은 무()를 향해 말씀하셨다. 아무것도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그런데 무()가 유()가 되었다. 하나님이 창조 때 하신 말씀은 거룩한 독백이 아니다. 반응이 있었다. 반응한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다. 일어난 사건 역시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상이 만들어진 결과다. 창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한 신비다.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 말씀의 역동적 능력은 이스라엘의 창조 기록에도 나타난다. 하나님은 자녀가 없는 노부부에게 위대한 나라의 근원이 될 거라는 약속을 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능력의 말씀으로 이삭을 주셨다. 아브라함이 된 아브람과 사라가 된 사래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은 없던 것을 말씀으로 생기게 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이름을 부르셔서 존재하게 되었다.

구약 성경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해야 했다. 이스라엘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입이었으며(15:19, 6: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라고 했다. 신약 성경은 말씀에 대한 구약 성경의 시각을 확증하고 확대한다. 신약에서도 하나님은 능력 있는 창조의 말씀을 하는 분이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할 수 있고 이전 것을 새롭게 하며 축복하고 재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신약에서 핵심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말씀을 하신다는 사실이다. 마리아는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1:38)라고 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불가능을 향했으며 마리아에게 드리운 그늘 아래에서 강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리스도는 계시의 수단이자 계시의 현현인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그분은 말이자 사건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된 체현이다. 그리스도는 단지 정보만 전하는 교사 이상이시며, 요한복음의 기록처럼 육신이 된 로고스이시다. 예수님은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드러내셨다. 그분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다. 그분의 말씀하심은 능력 있는 행위였다. 행동의 형태로 실천되었다. 그분의 행동은 말씀에 내재된 능력의 외적 실현이었다. 말씀의 본질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 있는 권위와 능력으로 나타났다.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이 스스로 길을 만든다는 성경의 가르침으로도 확인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복음을 듣는 들음은 말씀의 결과다. 말씀은 세상을 만들었듯이 들음을 만들어 낸다. 믿음이 없던 사람도 들음으로 믿음을 얻는다.

교회가 선포하는 말씀은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고 활력이 있으며 창조적이고 구원하며, 죄를 없애고 사망을 이기며 치유하고 생명을 준다. 강단에서 설교해야 하는 말씀이 바로 이런 말씀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도록 사역자들을 부르셨다.

선포된 자가 곧 선포하는 자인 곳은 오직 교회 뿐이다. 말씀을 전하도로고 위임받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10:16)고 하셨다. 그 고뇌와 영광, 능력과 어리석음, 영예와 책임은 기독교 사역자의 몫이다. 기독교 사역은 십자가와 부활, 천국과 지옥 사이의 경계에서 일어난다. 이 경계 지역은 겁쟁이들을 위한 곳이 아니다.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와 그 능력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강단에 속할 자리가 없다.

교회는 교회가 하는 사역과 말씀에 대한 성경의 시각을 회복해야 한다. 그럴 때 다시 한번 힘을 얻고 이 나라의 양심으로서 담대하게 설교할 수 있다. 사역자는 선교사로서 교회에서 이임한 다양한 지역에 가서 합법적으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무엇보다 모든 상황에서 할 말의 토대가 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전하는 종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설교로 부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은 그 말씀을 말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거듭 강조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을 분출한다. 이것이 설교의 신비와 능력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설교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마라. 설교만으로는 충분한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우므로 말씀을 적용할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위의 글은 제임스 댄, 확신에 찬 설교(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1-10-26_설교의 능력.docx (16.7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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