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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주는 설교 [제 6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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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5 08:48:41


 

  

듣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예수님을 단지 좋은 분으로만 소개하면 성경의 그리스도를 정확히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죄인을 침착하고 무심하며 태연한 사람의 집단으로 보지 않는다. 제대로 된 복음을 들은 죄인은 절대 침착하거나 무심하거나 태연하게 있지 못한다. 그들은 복음 때문에 불쾌해하며 그 불쾌감을 극복하기 위해 믿음을 발휘해야 한다. 마음을 불쾌하게 만드는 예수님이 자신에게 좋은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믿음이다. 죄인인 그리스도인도 자신을 실족시키는 예수님이 샤론의 수선화이고 골짜기의 백합화며 많은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난 분이라고 인정하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고 비그리스도인에게 메시지를 제시할 때 선택권을 준다. 메시지를 듣는 죄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일이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리스도를 용납하거나 거부하는 능력이 개인에게 있으며, 선택이 개인의 권리라는 인상을 준다. 이런 방식은 불쾌감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흥미롭게 다가온다. 죄인에게 복음을 거부할 힘과 권리와 자율권이 있다는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강단 초청 시에 일어나는 많은 말과 행동은 복음이 선택적이라는 인상을 강화한다.

이것은 복음에 대한 성경의 생각이나 설명과 다르다. 성경에 제시된 복음 선포는 명령이다. 바울이 아덴 사람에게 한 말을 보라.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17:30). 구원을 제시하거나 그리스도께 와서 구원을 받으라는 초청으로 복음을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복음이라는 제안과 초청은 평범한 일이 아니다. 그 제안을 거부하거나 초청을 거절할 자유는 사람에게 없다. 복음은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의 순종을 말한다. 믿음을 명령에 대한 반응이라고 하며(명령이 있어야 순종이 있다) 복음을 거부하는 행위는 처벌이 불가피한 불순종 행위로 여긴다. 복음을 듣는 죄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말은 전체주의 국가의 시민이 말하는 자유와 매한가지다. 국가는 국민에게 원하는 대로 투표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국가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투표하면 투옥이나 망명이 불가피하다.

복음은 믿음에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회개를 요구하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명령한다. 따르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강하게 말한다. 이런 명령을 듣고 불쾌해해는 이유는 그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한번 생각해 보라. 사랑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자신이 창조한 자녀가 죽음과 파멸로 향해 가는데 당장 나오라고 명령하지, 나올지 말지 선택하라고 제안하시겠는가? 하물며 세상의 죄 많은 부모도 자녀에게 그렇게 하지 않는데 말이다.

복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설교하는 사람은 아무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복음을 전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자 했던 하나님을 배제하고 그리스도가 핏값을 주고 사신 사람들이 누리는 복에 대해서만 태연하고 무신경하게 말한다.

복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한다면 비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다시 말해 죄인인 비그리스도인에게 수용이나 거부의 권리가 있다는 태도다. 이런 방식의 복음 제시는 아무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죄인의 비위를 맞추며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남아 있을 권리가 그에게 있다는 자율 의식을 고취한다.

이는 성경의 방식이 아니다. 성경 어디를 봐도 비그리스도인, 즉 회개하지 않는 죄인에게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종교적 결단을 내릴 능력, 즉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일 결정을 할 능력이 있다는 내용은 없다. 어느 비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건강하고 도덕적으로 바른 사람이라서 의지적 행위로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믿기로 한다면 그 죄인은 이미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좋은 상태에 있는 사람이다. 심각한 상태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모든 증거를 비교하고 검토한 뒤에 기독교는 사실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것이다.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며 죄인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복음 제시에는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려고 사망과 지옥을 통과하신 거룩한 구세주가 필요 없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위의 글은 제임스 댄확신에 찬 설교(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2-03-15_불편함을 주는 설교.docx (15.1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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