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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복종 [제 712호]
   조회수 104
2023-05-08 11:12:02


 

바울은 사랑 가운데 행하라는 언약의 계명을 자녀 양육, 재정, 갈등 해결, 관용, 긍휼, 역경 등의 삶의 모든 분야에 적용했다. 결혼 생활에도 적용했다. 하지만 새것에 낡은 것을 짜깁기 하는 교회의 습성 때문에 기혼자를 향한 바울의 가르침은 알아볼 없는 지경으로 변질되었다. 알다시피 아내들을 향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한 사람은 바울이다. 대다수 여성은 이런 여성 혐오적 개념에 몸서리를 친다. 반면에 남자들은 어깨를 으쓱이며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한다.

알고 보면 기혼자를 향한 바울의 가르침은 그가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언약의 계명에 근거하여 빚어낸 신약 최고의 사례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흥미로운 사실인데 가장 오래된 헬라어 사본들에는 “복종하기르”이라는 단어가 없다. 헬라어 본문에는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주께 하듯’이라고만 되어 있다. 동사가 없으니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자기 남편에게 무엇을 주께 하듯 하라는 말일까? 애매하다.

 

역본에 “복종하기를”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은 바로 구절에서 그렇게 추론할 있기 때문이다. 문법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동의하듯이 본문에 삽입될 동사는 실제로 구절에 쓰인 ‘복종하다’라는 동사가 맞다. 요지는 구절의 동사가 구절의 동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아내들이여… 복종하기를”이라는 말에 구절이 없다면 아무도 아내들이 자기 남편에게 무엇을 주께 하듯 해야 하는지 없다. 그래서 아내들을 향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복종하다’라는 동사가 등장하는 구절부터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말씀이 지침이 되어 생활화된 가정에서 자란다고 상상해 보라. 식구들이 그대로만 산다면 필요한 규율이 개나 될까?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기꺼이 사로 복종하기로 양쪽 결단한다면 해결되지 못할 부부 갈등이 과연 있을까? 이는 ‘그리스도가 당신을 최우선에 두셨듯이 당신도 다른 사람을 최우선에 두라’는 말의 바울식 표현이었다. 이것이 상호 복종의 원리다.

 

확신컨대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변혁적인 관계 역동이다. ‘복종하다라는 단어는 우리 문화에서 먹히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하다. 단어를 직역하면 종속되거나 다른 이의 권위 밑에 놓인다는 뜻이다. 삶의 통제권을 남에게 내주는 것보다 즐거운 일이 있을까? 그러나 바울은 개인의 독립성을 일방적으로 무조건 버리라고 명한 것이 아니다. 이는 서로가 해야 일이다.

 

피차 복종하라.”

상호 복종이 특징인 관계에서는 양쪽 자원해서 상대에게 복종한다. 상호 복종은 상호가 아닌 통하지 않는다. 양쪽 노력해야만 통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언약에 참여하는 이들은 서로 복종하되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해주신 일에 비추어 그리해야 한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서로 존경하기에 복종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복종을 받을 자격이 없는 서로 대부분이다. 바울은 우리를 예수님이 다락방에서 천명하신 역동으로 다시 데려간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 각자에게 복종하셔서 우리 죗값을 치르셨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서로 복종하라는 뜻이다. 그분의 희생이 우리에게 상호 복종의 동기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위의 글은 앤디 스탠리, 교회를 살리는 불가항력의 복음(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3-05-08_상호 복종.docx (16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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