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다시 읽는 야베스의 기도2019-09-18 16:3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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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읽는 야베스의 기도 최광희목사 (연구위원, 행복한교회)
우리의 눈과 귀는 과연 믿을만한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골라서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골라서 듣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같은 현상을 경험하고도 전혀 다른 보고를 할 수 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전혀 다른 것을 깨닫고 다르게 평가한다. 그러한 일의 극단적인 경우는 이단들이다. 같은 성경을 읽고도 ‘여호와의 증인’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의 맏형이라는 망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경우가 그러하다면 다른 책들 역시 얼마든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2001년 초에 [야베스의 기도]가 발행된 후에 참으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며 기도로 은혜와 복을 누리고 있다. 또한 이 책이 그러한 영향력을 발휘하자 이 책에 대해서 어떤 약점이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한 내용을 담은 책 중에는 귀를 기울여야 할 이야기도 있는가하면 오히려 [야베스의 기도]의 명성에 편승해서 또 다른 특수를 누리고 싶은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내용도 있다. 그러한 분들은 [야베스의 기도]를 본인이 읽고 싶은 대로만 읽어서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야베스의 기도]에서 첫 번째 기도는 바로 복을 구하는 기도이다. 그러나 과연 복이란 무엇인가? 유교에서는 보통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다섯 가지를 꼽는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나님의 은혜 그 자체이다. [야베스의 기도] 35쪽에서 브루스 윌킨슨은 ‘복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정의한 후에 “그는 어떤 복이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자신에게 주어질지에 대한 결정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있다.”라고 서술한다. 브루스 윌킨슨은 혹시라도 독자들이 기복주의와 번영신학으로 치우칠 것을 미리 경계하고 있다.(36쪽) 그러나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은 모두 기복주의인양 몰아붙이고 있다. 그런 글을 읽으면 오늘날 성도의 형통을 구하며 병 낫기를 구하는(이것은 약 5:16의 명령이다) 기도를 간절히 드리는 모든 목회자들을 박수무당으로 몰아붙인다는 불쾌감을 떨칠 수 없다. 이런 분들은 정말 마음을 가다듬고 [야베스의 기도]를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야베스의 기도]에서 두 번째로 구하는 기도는 지경을 넓혀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저 넓은 아파트, 넓은 교회, 큰 회사 등등을 구하는 세속주의가 아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끼치기를 구하는 기도이다.(45쪽) 우리가 전도를 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회개하기를 바란다. 목사로서 내가 설교를 한다면 더 많은 분들이 와서 듣고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사업가로서 더 많은 돈을 벌어서 하나님의 선한 일에 사용하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벌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악한 방법을 동원하는 사람이라면 기도할 이유도 없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응답하실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일 아침, 지경(영향력)을 넓혀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하루를 살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내가 이 사람의 어떤 필요를 채워주어야 할지 모른다는 긴장으로 살게 될 것이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 이혼 위기에 있는 사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내게 붙여 주셨으나 나의 무관심으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지나갔다면 그런 안타까운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는 바로 이런 거룩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러한 기도가 마치 이기적인 목적으로 기도하는 세속주의인양 오해한 사람은 [야베스의 기도]를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야베스의 기도]를 비판하고 있는 “다시 쓰는 #####”라는 책은 [야베스의 기도]가 기도 응답에 관한 이야기만 있고 응답하지 않는 기도에 관한 언급이 빠져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야베스의 기도]는 기도 전반을 다룬 기도 백과사전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야베스의 기도]는 한편의 설교일 뿐이며 누구든지 한편의 설교에서 강조점이 있는 법이다. 만일 우리가 기도의 정의, 기도의 중요성과 필요성, 기도해야 할 제목들, 기도가 응답되는 조건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들,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의 성도의 자세...... 이렇게 기도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을 쓰려고 했다면 들고 다니기 부담스러운 두께의 책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속에는 야베스의 이야기는 하나의 좋은 예화로 언급될 것이다. “다시 쓰는 #####”에서 저자는 브루스 윌킨슨이 물질적인 복에나 관심이 있고 성도의 변화된 삶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누구든지 [포도나무의 비밀]이나 [하나님이 상주시는 삶] 등 브루스 윌킨슨의 또 다른 책 중 한권만 읽어 보았다면 이런 어리석은 실수를 피할 수 있었으리라. [야베스의 기도]는 21세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다. 그러나 이런 귀한 책이라도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서 읽어서 기복주의로 이용하는 것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혹은 반대로 [야베스의 기도]는 순전히 기복주의, 세속주의, 번영신학이라고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발로 차 버린다면, 그는 은혜 없이 알몸으로만 주의 일에 충성하다가 겨우 도토리만한 열매를 거두고 말 것이다. 이제 한번만 대충 읽고는 던져놓은 [야베스의 기도]를 신중히 다시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성경적 원리에 근거하여 정말로 야베스처럼 기도를 드림으로 충만한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위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바란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복)를 필요로 한다. 또 하나님께서 나의 지경(영향력)을 더욱더 넓혀 주시기를 원한다. 또 지금까지 해 왔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이렇게 하면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해 보지 않는 일이나 지금 하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주실 때는 정말이지 하나님의 손(능력)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그렇게 내가 능력 밖의 일을 감당하면서 이것은 전적으로 주의 은혜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또한 이런 많은 은혜를 입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우리는 시험에 빠지거나 유혹에 넘어져서는 안 된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인 우리가 시험에 빠지거나 유혹에 넘어지면 지끔까지 우리가 섬겨왔던 모든 사역이 무너지는 것이요 나를 통해서 공급된 모든 선한 영향력이 무너지는 것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시험에 들지 않기를 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날마다 기도한다. 주님, 나에게 많은 복을 주십시오. 오직 주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하루라도 살 수 없나이다. 주님,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십시오. 나는 주님을 위해 더 중요한 일을 더 많이 섬기고 싶습니다. 주님, 주의 손이 나와 함께 해 주십시오. 주님이 돕지 않으시면 큰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 나를 악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원수 사단은 나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오직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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