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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화된 영혼, 영화된 육화 [제527호]
   조회수 12
2019-09-18 14:26:59

등록일 : 2019/07/09 14:53

 




육화된 영혼, 영화된 육화
 

우리는 늙어갈수록 자신의 참 모습을 현재 시제로 알아야 한다. 그런 지식을 얻으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둘로 나누어진 존재이다. 즉, 우리는 물리적 몸 안에서 그 몸을 통해 살아가는 인격적 자아이다. 몸의 기운과 능력에 의지하여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만 동시에 몸의 제약 때문에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 육체는 우리가 해야 할 많은 필수적 행위를 거듭 요구한다.
육체는 물리적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물론 어느 기술이든 그것을 숙달하려면 정신노동도 수반되어야 한다. 예컨대 스포츠를 위한 기술, 수술하는 기술, 차를 운전하고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술 등을 생각해 보라. 이와 비슷하게 영혼도 논리나 연산 같은 정신적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악기 연주처럼 영혼과 육체가 한데 어우러지는 기술도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사상가들은 인간을 육화된 영혼이자 영화(靈化)된 육체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당연하고도 통찰력 있는 말이다.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면서도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철두철미하게 서로 맞물려 있다.
예수님이 나시기 수세기 전에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육체가 우리의 성장을 제한한다고 보았다. 즉, 몸은 감옥과 무덤 같은 것이고 우리의 참 존재인 영혼은 그 몸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 이후로 많은 사람이 그런 비슷한 개념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이 증대되려면 결국 육체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성경에 근거한 우리의 믿음이 다음 두 가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1)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셨다. 삼위일체의 제2위 하나님이 친히 인간이 되셔서 몸을 통해 사셨다. (2) 예수님이 부활하여 끝없는 삶에 들어가셨는데, 그분의 영화된 이성도 그 영생의 영원한 일부를 이룬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도 몸의 부활로 풍성해질 그날을 고대한다. 그날이 오면 육체도 영혼도 근본적으로 새롭게 변화될 것이다. 그 소망대로 우리는 장차 변화된 육체 속에 다시 심겨져 영원히 몸 안에 살 것이다. 재창조된 세계 질서 속에서 성장하고 발전하며 활짝 피어날 것이다. 흠 없이 혁신된 우리의 인격적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없이 깊은 교제를 나누며 온갖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분은 우리 하나님이요 구주요 주님이요 친구이다. 영혼과 육체의 영원한 재결합은 이 영광스러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노화에 들어서면 몸이 짐스럽고 영혼을 제약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구체적 이유는 탈진, 굶주림, 질병, 회복할 수 없는 인체의 구조적 손상, 돌이킬 수 없는 퇴행성 기능 부전 등 다양하다. 몸에 문제만 없다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즐기겠는데 몸이 막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혼, 즉 사고하고 느끼고 기억하고 상상하고 소통하는 우리의 자아가 육체와 분리되면 이전보다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중대한 오류이다.
 
인간은 무엇이며 하나님은 왜 우리를 지으셨는가?
인류를 구성하는 모든 인간은 육화된 영혼이자 영화된 육체이다. 즉, 정신적 존재이자 물리적 존재이다. 본래 한 쌍의 남녀로 지음을 받은 인류는 하나님에게서 번식의 사명을 받았다. 하나님이 그분의 기쁨을 위해 질서 있게 창조하신 환경의 관리자로 지음을 받았다. 그 일을 할 때 우리는 기쁨을 얻도록 설계되었다. 인간의 찬송과 감사와 섬김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말이다. 
그런데 인류의 이야기가 시작된 직후 안타깝게도 죄가 인간의 본성을 더렵혔다. 죄는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무시하는 반항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속과 회복의 계획을 가동하셨다. 현재 인류는 바로 그 과정을 지나는 중이다. 모든 개개인이 이 회복에 실제로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에 부딪혀 예수를 믿고 그분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만 그것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늘 다음과 같다. 이 세상의 삶은 시험적이고 한시적이며 때가 되면 모종의 변화와 이행으로 다른 곳의 더 풍성한 삶에 이르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죽음과 거기에 흔히 선행되는 명백한 육체적 노쇠는 본래 하나님이 지으신 선한 창조 세계의 일부가 아니다. 창세기 3장에 나와 있듯이 그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우리 영혼은 무엇인가?
인간의 영혼은 곧 인격의 의식적 자아이다. 나를 나로 아는 그 ‘나’이다. 이것은 타고나는 것이며, 인식과 반응과 교류와 관계의 발원지이다. 인지적 의문과 사고, 인간과 상황과 자원에 대한 탐구, 지난 일에 대한 기억과 그 기억이 불러오는 정체감, 감정을 느끼고 계획을 세우는 일, 창의적 예술 작품의 지각과 실연, 진선미의 실체에 대한 이해, 창의적 대인 관계 이 모두와 그 이상이 모두 영혼의 활동이다. 육신의 삶 곧 신체 활동이 끝나도 영혼의 삶은 계속된다. 현재 우리에게 있는 인격적 자의식은 결코 끝이 없으며 오히려 기쁜 쪽으로든 슬픈 쪽으로든 영원히 강화되고 지속된다.
 
우리의 몸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몸을 주셔서 몸 안에서 그 몸을 통해 살아가게 하신 데에는 두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그분의 관리인인 청지기로서 물질계를 다스리는 데 적합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둘째, 지금 여기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몸은 명백히 경험과 표현과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 위의 글은 J. I. 패커의 『아름다운 노년』(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19.07.09) 육화된 영혼 영화된 육화.hwp (16KB)527.jpg (1.19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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