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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위선자가 있는 이유 [제542호]
   조회수 215
2019-10-22 16:25:51




 



교회에 위선자가 있는 이유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보다 더 난잡하게 살아.” “아버지는 교회 집사였는데 엄마를 속였어.” “자칭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사람은 내 아는 불신자들보다 더 추잡하게 사업을 해.”

 이런 말들이 익숙하지 않은가? 이 말들은 모두가 싫어하는 위선을 지적하는데, 이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다. 교회 안의 위선자들은 기독교를 집중적인 비난의 표적으로 만드는 일등 공신이다. 우리는 모두 기독교적 위선을 경험했고 또 우리 자신이 그 일부였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심각한 문제는 꼼꼼히 따져 보아야 한다.

위선자에게 당한 일을 생각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사람의 심정을 아시는 분이 있다. 예수님이시다. 예수님도 그 일을 겪으셨기 때문이다. 주님이 가혹할 정도로 독설을 날리신 이들을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마 23:3,5). 대부분 위선은 이 두 구절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에게만 그러신 것은 아니다. 마태복음 7장을 통해 우리에게도 명령하셨다. “네 눈 속에 들보”가 있을 때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지적하지 말라고 하셨다. 로마서 2:3은 위선을 이렇게 정죄한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예수님이 위선을 미워하신다면 기독교 역시 당연히 위선을 권장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교회에 왜 여전히 위선이 팽배한가? 교회 안에 위선자가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교회에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 단순히 부모나 남편 혹은 아내나 친구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리스도인인 척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믿지만 실제로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도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21에서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다.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 중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지만 실제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두렵다. 

교회에 위선이 팽배한 이유는 때로 우리가 만나는 ‘그리스도인‘이 실제로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는 간단한 대답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일일이 판단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을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되돌아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 


둘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위선자이다.

교회에 위선자가 있는 다른 중요한 이유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위선자이기 때문이다. 사전은 위선자를 “스스로 공언한 신념이나 느낌과 모순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정의에 부합한다.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부르신 ‘온전한 삶’(마 5:48)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매일 죄를 짓는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죄인이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위선자이다.

경건하게 살고자 노력한다고 해도 위선자라고 불릴 위험에서 면제되지는 않는다. 나아지는 면이 있다고 해도 계속 넘어지고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좌절하는 이유는 “덕망이 있는 척 혹은 신앙심이 깊은 척 거짓으로 포장하는 사람“이라는 위선자에 대한 또 다른 정의와 연관되어 있다. 한 점 흠도 없이 깨끗한 척하면서 조금이라도 미숙하고 서투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비판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에 대한 묘사와 완벽히 일치한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런 사람을 찾을 수 있는가? 당연히 그렇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정도는 달라도 위선적인 모습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모든 유대인을 위선자로 정죄하실 수 있었음에도 바리새인의 행동만 위선적이라고 집중 비판하신 사실을 생각해 보라 이 사실에서 죄인과 위선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죄인이고 따라서 어느 정도는 위선자에 해당하지만 모든 죄인이 바리새인과 같은 범주의 위선자는 아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부류의 위선자를 만난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당연히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중에 이런 부류의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위선자를 만날 경우 기독교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겠는가?

병원에 갔을 때 곳곳에 환자가 보인다고 놀랄 사람이 있는가? 그들이 실제로 병자라고 해서 놀라겠는가?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중병에 걸려 있다. 다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저마다 다른 상태에서 교회를 찾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만 모이는 곳이 아니다. 상하고 다친 사람이 예수님으로 인해 천천히 회복되어 가는 경험을 하는 곳이 교회이다. 

교회 안에서 위선자를 볼 때 타산지석으로 삼아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결단하고 하나님을 외면하는 대신 하나님에게 힘을 달라고 간구하는 태도가 더 온전하고 타당한 반응이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이며 그분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 위의 글은 클린터 E. 아놀드 & 제프 아놀드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난감한 질문 명쾌한 대답』 

(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19.10.22) 교회에 위선자가 있는 이유.hwp (15.5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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