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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창조 [제 716호]
   조회수 170
2023-06-06 22:22:46


 

 

요한복음 1 1절은 시간의 시작에 대해 말하면서 만물을 창조하는 바로 최초의 순간에 예수님이 현장에 계셨다고 알려준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빅뱅으로 생긴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의도성과 목적과 개입에 관한 이야기다. 예수님은 역사의 페이지에 그곳에 계셨다. 구약이 마감되고 한참 지난 후에야 성육신의 형태로(인간의 몸으로) 나타나셨지만, 무대의 커튼이 열리기 전에 그분은 이미 존재하고 계셨다(계시록 19:13; 1:1).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이름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있다. 말씀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로고스(logos). 단어가 그렇게 강력했던 이유는 그리스인이 우주의 배후에 있는 비인격적 세력을 규정할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인은 모든 지식과 지혜, 심지어 창조를 가능하게 창조적 세력을 지칭하는 맥락에서 로고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당시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고스에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요한은 편지를 이미 존재하며, 의미가 확정된 용어를 차용하여 추가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당대 문화에서 모든 창조물의 배후에 작동하는 강력한 세력을 상징했던 단어를 빌려와서 진리를 주입했다. 여느 위대한 작가나 연설가처럼 로고스라는 단어를 강조하려고 때는 여러 각도에서 단어를 반복해 사용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1:11, 14).

 

요한은 먼저 말씀이 만물의 시작이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실제로 그분은 모든 알려진 존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계셨다. 우리가 사실을 아는 이유는 요한이 말씀을 소개할 '계시다' 아니라 '계셨다'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말씀이 태초보다 선재했다.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만물이 존재하기 전에 이미 계셨다.

 

요한이 강조하는 번째 사실은 말씀이 선재하셨을 아니라 함께 계셨다는 것이다. "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구절에서 "함께" 번역된 헬라어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라는 뜻이다. 말씀이 하나님과 아주 깊은 교제를 하셨음을 가리킨다. 그들은 말하자면 서로 눈을 들여다보며 대화하셨다. 서로 깊이 바라보셨고, 서로 내밀하고 깊은 소통을 하셨다. 서로 항상 뜻을 같이 하셨다.

 

셋째, 요한은 말씀이 하나님이셨다고 말한다. 말씀에서 우리는 선재하고 공존하시는 말씀이 또한 스스로 계신 분임을 있다. 하나님은 자신이기 위해 자신 외에 무엇도 필요하지 않은 유일한 분이었다. 피조 세계에서 어떤 다른 대상에 의존하지 않는 존재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없다. 하나님만이 자기 완결적 존재시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말한다. 그분은 선재하시고 하나님과 공존하시며 자존하시는 분이지만, 또한 손으로 만질 있는 존재가 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통치와 신성의 물리적 현현이 자신이 직접 만드신 피조 세계에서 실현되게 하셨다.

 

말씀은 지상에 지금까지 존재했던 어떤 이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구성된 인격체, 그분이시다. 말씀은 창조를 주도하신 분이다. 요한복음 1 3절이 말하듯이 존재하는 중에 말씀이 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구절에서는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것이 없느니라"라고 말한다. 말씀은 빅뱅 이론과 진화론을 전적으로 배격한다. 왜냐하면 이론들이 인격적 존재의 사역이 아니라 비인격적 세력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며 존재를 이어가는 피조 세계는 '그것' 아니라 '그분'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창조는 어떤 과학적 원리가 아니라 어떤 인격체와 연관이 있다. 말씀으로 지어지지 않은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말씀은 태조 이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이셨다.

 

진화론 신봉자들이 진화론을 맹신하는 이유는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다. 어떤 인격적 존재가,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사실을 부정할 있는 핑계로 작용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나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필요가 없다.' 사유하는 인격적 존재 중에 나보다 중요하고, 결정을 폐기할 있는 이는 없다. 많은 사람이 스스로 신이 되기를 원한다. 그들 자신의 실존을 좌우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격적인 존재에 의한 창조보다는 비인격적 세력의 존재를 믿는 편을 선택한다.

 

세상은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을 위해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세간의 통념과 달리 세상은 무엇보다 우리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게 말씀, 바로 예수님을 위해 세상이 창조되었다. 골로새서는 만물이 "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분은 모든 것이 각자 자리를 지키도록 붙들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선물로 그분께 다시 돌려주셨다. 창조 세계의 소유권을 이해하는 것이 평안과 믿음과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필수적이다.

 

[위의 글은 도서출판 디모데의 신간 토니 에반스 , 『예수, 이름의 능력』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3-06-07_말씀과 창조.docx (17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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