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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로 유효해지는 복음 [제 760호]
   조회수 87
2025-04-15 17:44:58


우리는 본능적으로 받은 은혜를 쉬이 잊어버립니다. 우리의 체질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어진 것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공기가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서 배우지 않으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삽니다. 배운다 하더라도 배우는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사실은 그저 하나의 ‘명제’에 불과할 뿐 우리의 삶에 전향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합니다. 공기가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순간은 공기가 없는 곳에 갈 때입니다. 공기가 없는 어떤 공간에 단 1분 정도만 있어 보면 누구라도 공기의 소중함을 절감할 것입니다. 그리고 공기가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금세 흐릿해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체질입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이 너무나 익숙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에게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것은 10,000달란트 빚을 탕감 받는 은혜를 누리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마18:21-35). 10,000달란트를 오늘의 원화로 환산하면 약 9조원입니다. 단순 계산으로 오늘날의 평균 근로자 임금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15만년을 벌어야 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입니다. 그렇게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게 있는 100데나리온의 문제를 쉽게 해결하지 못합니다. 나에게 빚진 100데나리온을 끝까지 받아내기 위해 누군가의 멱살을 잡습니다.  


이는 우리의 ‘잊어버리는’ 체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받은 은혜를 망각하고 받을 100데나리온을 위해 그를 감옥에 처넣어버리는 행위, 받은 은혜를 업신여기고, 무시하고 그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끝까지 받아내겠다는 악함. 그것이 오늘 우리의 현주소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00데나리온을 끝까지 받아내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용서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주장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우리의 악한, 연약한 체질을 아시고 용서할 기회를 베푸십니다. 용서할 기회를 마주할 때 비로소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아는지, 10,000달란트 빚 탕감해주신 은혜를 얼마나 귀히 여기는지가 드러납니다. 내가 용서해야 할 일이 내게 너무나 뼈아픈 상처라서 그 사실을 마주 대하는 것조차 무섭다 하더라도 이는 분명코 100데나리온의 문제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베푸신 은혜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내게 먼저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요,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포인트, 우리의 ‘은혜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셔서 고쳐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선물은 자유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명시된 바 우리가 용서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십니다(마6:12, 14-15). 이 대목에서 하나님이 베푸신다는 용서는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용서’가 아닙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택하심에 따른 중보자 예수님의 보혈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다는 용서는 실체로서의 은혜, 실체로서의 자유입니다. 한 마디로, 용서할 때 비로소 우리는 내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실감하여 나를 얽매게 하는 것들로부터 진정 자유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사함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피, 즉 창조주 하나님의 생명 값이 우리 죄를 위해 대신 지불되었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할, 사함 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분명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자칫 추상적, 관념적인 개념에 그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의 기회를 주십니다. 내가 그 기회를 붙들어 용서할 때 나의 용서받았음이, 나의 죄가 씻어 졌음이 구체적인 실상이 됩니다. 내가 용서하는 만큼 10,000달란트 탕감 받은 은혜를 알게 됩니다. 은혜를 아는 만큼 정죄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은혜에 대한, 죄 사함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 위에 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주님께서 그토록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자유를 누립니다.  


또한 그러므로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고통스럽습니다. 용서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혜가 실감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과거의, 나 자신이나 타인으로부터의 상처에 매여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용서함으로 자유를 누리십시오. 그 대상이 당신 자신이든 타인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용서를 선택하십시오. 당신이 당한 일이 얼마나 흉악하든 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든, 당신에게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이 있다면 용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위의 글은 브루스 · 토니 히블, 『내리 용서』(도서출판 디모데)의 일부 내용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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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2025_04-15_용서로 유효해지는 복음.docx (16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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