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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양심적인 것 [제 772호]
   조회수 106
2025-10-17 11:54:45

흔히 '양심적'인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자신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며 그에 따른 실수나 실패를 괴로워하는 것이 양심적인 것이며, 그것이 바로 깨어 있는 양심, 살아있는 양심이라 칭찬합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 이 말은 타당할지 모르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진술은 실상 복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가 가지는 인간적 믿음의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단지 목숨을 내놓으신 것만이 아니라 비참한 형벌을 당하셨습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께서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으로 나셔서 육신의 한계, 율법 아래에 자신을 제한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율법의 일 점 일 획까지도, 남김없이 그 요구를 온전히 이루신 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죽음의 권세, 사망의 옭아매는 것을 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나의 것이 됩니다. 죽음으로 전남편과의 모든 법적 혼인 관계가 종료되듯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음으로 정죄의 실질적인 대상이 사라집니다(롬 7:1-4, 고전 15:55).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 생명으로 덧입혀 짐으로 과거 하나님을 떠나 내 힘으로, 나를 지키기 위해 애써 수고하던 인생에서 벗어나 나를 위해 피 흘리신 분, 예수님을 위한 인생으로 사는 길이 열립니다(고후 5:15).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께 대해 살아난, 의의 무기로 자신의 인생을 드릴 수 있게 됩니다(롬 6:13). 

로마서 8장 2절은 이를 두고, 정죄의 책벌을 합법적으로 요구하는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서 벗어나, 결코 정죄가 없으며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시는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로 옮겨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다시 말해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의 죄가 깨끗이 씻음 받는 것은 물론이요, 나아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주님을 믿고 따를 때, 내 힘으로는 도무지 지킬 수 없는 율법이 지켜지게 하신다는 위대한 복음입니다. 


복음을 모르면 원수 마귀의 공격에 당하고 삽니다. 마귀의 전략은 율법을 이용하여 우리를 정죄하는 것입니다(고전 15:56).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율법으로 우리 자신의 한계를 깨달아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롬 3:20, 7:7, 갈 3:24). 그러나 마귀는 이를 악용하여 율법을 무기삼아 법을 지키지 못한 우리를 공격합니다. 율법을 들이대면 그 율법을 완전하게 지켰다고 자신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잣대로 하면 죄가 드러나 그 죄를 타고 사망 권세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사탄은 이 지점에서 우리의 소위 ‘양심적인 생각’이 옳다 여기게 만듭니다. 율법으로 드러난 나의 부족함은 실상, 내 힘으로 한 치도 더 나아지게 할 수 없음에도 마치 내가 어찌할 수 있을 것처럼 그것을 끌어안고 번뇌하며, 다시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 애씁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절망이 있을 뿐이요, 그 절망을 경험할 수록 나는 두려움으로 반응하게 될 뿐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하는, 태생적인 한계에 마주하는 것입니다(롬7:15).  


이 사탄을 이기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사실을 붙들고(롬 8:1) 한시라도 빨리 죄책감, 죄의식에서 벗어나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께 믿음의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마 16:16-19).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찬양하며 내 안에 살아 계신 예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만족하며 나에게 주신 오늘을 감사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실체적으로 도우시고자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일, 그것을 사실적으로 인쳐 주시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를 통해 성령께서 주시는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세우신 권위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주십니다(롬 10:17). 또한 죄인의 본성 상 각기 제 갈 길로 가려 하는 우리를 영적 권위에 근거한 목양의 울타리 안에 있게 하셔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시 23:3-4). 몸 된 교회를 섬기게 하시는 과정 속에서, 형제자매와 하나 되는 과정 속에서 회개와 성숙의 기회를 주십니다. 그렇게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됩니다(엡 4:12-17). 머리이신 예수님과 같은 뜻, 같은 마음을 품고 같은 말을 합니다(고전 1:10). 들리면 믿어지고 행해지는 예수님의 가족이요, 주님과 하나되어 율법이 지켜지는 복을 누립니다(눅 8:19-21).


그러므로, 신자에게 무엇이 양심적인 것입니까? 자신만의 도덕률을 적용하며 죄의식과 죄책감을 짊어지는 것이 양심적입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적으로 솔직하게 보여 훌륭하게 느껴질지 모르나, 하나님 중심의 관점으로 볼 때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교만입니다. 그것은 아무런 실효도 없습니다. 죄책감과 죄의식을 벗어버리고 죄의 값을 남김없이 지불하신 예수님을 기뻐하는 것, 교회 됨을 즐거워하여 사모하는 것 그것이 양심적인 것입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자녀 됨의 자존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어린 아이들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주신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오늘도 천국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_디모데성경연구원

첨부파일2025_10_17_진짜 양심적인 것.docx (21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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