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애굽기 3장에는 하나님께서 미디안 광야를 방황하던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애굽의 왕자로 부족함 없이 살다가 동족 이스라엘을 향한 열심으로 애굽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피했던 모세는 떨기나무에 불로 임하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셨고 그들을 애굽에서부터 구원하시리라는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그 일에 모세 너를 보내겠다 하시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자신의 사명을 거부하려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3:13)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맞이했을 때 예상되는 상황을 가정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여쭙습니다. 이름은 성경의 배경에서 존재의 본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모세의 질문은 단지 식별 가능한 명칭을 묻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묻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질문에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의 물음에 대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답변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와 무게가 특별합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십니다. 그 누구의 도움이나 동인 없이 오직 하나님 자신의 의지적 뜻에 따라 계십니다. 시간의 개념을 초월하여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계십니다. 공간의 개념을 초월하여 모든 곳에 편만히 계십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이러한 초월적인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과 경험, 인식의 한계를 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제한된 인식, 경험, 생각으로 하나님의 존재 방식의 본질을 알 수 있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초월적인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것, 편만하다는 것, 스스로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단지 아득히 상상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주는 것은 하나님’만’ 스스로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무엇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생명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에 의해 주권적으로 주어질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들, 딸입니다. 부모에게서 났습니다. 아버지든 어머니든 한분으로부터 출생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최소 두 사람이 그 존재의 동인입니다. 자연계의 모든 생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물, 식물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조차 그냥 있지 않습니다. 해, 달, 별, 산, 바다, 바위 등등의 허다한 무생물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물론 무생물은 많은 생물들과는 달리 존재의 방식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쉽게 관찰할 수도, 규명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이를 규명해보고자 연구하여 논리와 체계, 학문을 만들지만 그것은 단지 ‘보이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규정하려는 시도'일 뿐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비록 합리적이고 그럴 듯해 보일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 진실 여부를 확증할 수 없는 가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진실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해, 달, 별, 산, 바다, 바위 등등의 모든 것들 역시 그 시작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십니다. 나아가 성경은 모든 존재하는 사건들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았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도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른 자를 도피성으로 피하게 하셨습니다. 도끼질을 하다가 날이 빠져 가까이 있던 누군가의 머리를 강타해 죽게 하는 따위의 일입니다. 도끼 주인의 입장에서는 그저 지지리도 운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출21:1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연히 일어난 사소한 일조차 하나님의 계획에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일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우연이 역사의 거대한 물꼬를 틀어 버린 일들로 가득합니다. 존재 이유의 끝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부모를 통해 출생하는 인간이나, 수정을 통해 번식하는 동식물이나, 호흡이 없는 무생물이나, 우주의 흘러가는 역사나,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나 그 모든 것들의 존재 동인은 홀로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만이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근원이 되십니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을 존재하게 하십니다.
같은 논리를 따라 나의 오늘, 우리 오늘의 모든 것은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홀로 스스로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을 허락하셨고, 오늘 만나는 사람들, 보고 듣게 하시는 모든 것들, 마주치는 모든 사건들을 있게 하십니다. 간절히 믿고 기대해 왔던 아파트의 청약 추첨에 당첨되는 대단한 일에서부터,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마주치는 신호등의 색깔과 같은 지극히 사소한 일들까지도, 자녀가 수석으로 일류 대학에 합격하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에서부터, 불현듯 불치병을 진단받아 시한부 인생으로 전락하는 비통한 일들까지도 빠짐없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의 흠 없는 계획과 경륜을 따라, 사랑으로 있게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신자라면,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믿노라고 고백한다면 주신 모든 것을 감사, 찬양해야 합니다. 홀로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이요, 당신은 그분을 믿는다 말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만족하지 못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며 자기 길로 갑니다. 하나님에 의해 보내진 모세, 그를 맞이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믿어 고개 숙여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자신들의 노역을 고되게 하자 모세에게 “우리를 죽이려 하는도다”(출3:21) 합니다. 출애굽 한 뒤에도 홍해를 앞에 두고 바로의 군대에게 쫓기자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출14:11) 합니다. 홍해가 갈라져 마른 땅을 건너고, 바로의 군대가 수장되는 것을 보았지만 금세 물이 없다며, 먹을 것이 없다며 “우리가 애굽 땅에서…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출 16:3)이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이 모든 원망과 불평은 그들이 출애굽한지 3개월도 채 안 된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토록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도 말입니다.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몰랐습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조금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있는 원망, 불평, 그리하여 나의 길을 고집하는 것은 정확히, 하나님을 향한 나의 무지와 불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못하기 때문에 내 입술에 원망과 불평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원망과 불평이 올라올 때, 그때는 회개의 기회입니다. 나의 불신과 무지를 회개하고 홀로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믿기에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원하는 일이든 원치 않는 일이든, 예상했던 일이든 예기치 못했던 일이든 모두, 남김 없이 감사할 ‘범사’(살전5:18)로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예배자의 인생입니다.
_디모데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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