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ome / 칼럼
page-visual_title

칼럼

글보기
'진짜 남자'로 사는 것 [제 783호]
   조회수 46
2026-06-09 14:21:12


 

소년은 남자가 되기 위한 여정에서 배워야 할 것이 많다. 그런데 이는 오직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남자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만 진정한 남자로 성장할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나마자가 되려면, 또한 자신이 남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면 안내자가 필요하다. 자전거를 고치고, 낚싯줄을 던지고, 여자아이에게 전화를 걸고, 직업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등 소년이 남자가 되기까지 마주해야 할 수만 가지 상황에서 방법을 알려줄 아버지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남성성은 ‘전수받아야’ 한다. 소년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관해 다른 남자(혹은 남자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다른 남자 아이들에게서도, 여자 아이들에게서도 배울 수 없다. 시인이자 사회비평가인 로버트 블라이는 이렇게 말했다. “수천 년간 이어져온 전통적인 아들 양육 방식은 아버지와 아들이 숨막힐 정도로 가까이 붙어 지내면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생업, 이를테면 농사나 목공, 대장아이 일, 재봉 같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게서 남성성을 배우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생이 우리를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망망대해 위의 배처럼 우리는 시험받을 것이다. 폭풍우는 한 남자로서 우리 안의 약한 구석들을 드러낼 것이다. 사실 이미 드러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특정 분야에서 느끼는 분노나 두려움, 무력감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왜 나는 그 여자와 결혼하지 못하는가? 결혼했다면, 왜 나는 아내의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인생의 사명을 찾지 못하는가? 왜 나는 재정적 위기 앞에서 분노나 우울증에 빠지는가? 등등. 그래서 우리는 감당할 수 있는 울타리 안에 머물고, 나머지 모든 것은 피하는 것을 삶의 기본적인 접근법으로 삼는다. 할 수 있어 보이는 것 혹은 직장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일에만 참여한다. 아내나 자여와의 깊은 관계 혹은 영적 삶처럼 무조건 실패할 것 같은 영역에서는 손을 뗀다. 

그렇다 보니 요즘 세상은 남성성을 전수받지 못한 남자 천지다. 기껏해야 반쪽짜리 남자다. 대개는 남자의 몸을 입고 돌아다니는 소년일 뿐이다. 직업, 가족, 재정, 책임은 지고 있지만 속은 소년에 지나지 않는다. 남성성을 전수받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해도 완성되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 대부분이 ‘미완의 남자’인 이유다. 그래서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던지든, 우리는 그 안에서 참된 남자 답게 살아가지 못한다. 나아가, 온전하고 거룩한 남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우리의 아들딸에게 전수해줄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길을 보여줄 누군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소년들, 청년들, 어른들로 가득하다. 남자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나는 남자인가? 이런저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소년들은 영혼 깊은 곳의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거나, 형편없는 답을 얻는 까닭에 불안한 어른으로 자란다. 진정으로 강하고 지혜로우며 자비롭게 행동하지 못하는 어른이 된다. 그들에게 길을 보여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탓이다. 

그러한 우리에게 희소식, 복음이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아버지 아래로의 부르심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갈 4:4-7)


조지 맥도날드는 이렇게 설명한다. “바울이 사용한 이 단어는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을 입양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자녀에게 다시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는 뜻이고, 그들이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열 배, 아니 무한히 그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실 것이다.” _전하지 않은 설교 중에서

당신이 신자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바로 지금’ 당신은 은혜롭고, 강하며, 삶에 깊이 관여하시는 아버지의 아들이다. 그분은 우리를 올바를 길로 이끌어줄 만큼 지혜로운 아버지, 우리의 여정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줄 만큼 너그러운 아버지시다. 이 아버지의 첫 번째 공급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루어졌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큰형 나사렛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구해주신 사건이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우리를 자신께로 부르셨다(혹은 지금도 부르고 계신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분이 계신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이다. 한 남자가 예수 그리스도께 삶을 드리고, 탕자처럼 발길을 돌려 아버지와 화해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핵심은 진정한 아들의 자리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로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된, 좋으신 아버지로서 우리 삶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신다. 가장 적절한 때에, 우리를 가르치고 도울 이들을 보내주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 주신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누구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게 하셔서 아버지의 남성성을 전수해 주신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다. 우리는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어주고 싶어 하신다. 사실,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아버지 역할을 해 주셨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을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훨씬 더 친밀한 아버지가 되어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우리도 그분의 양육을 받을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첫째, 우리가 미완성의 남자요 반쪽짜리 남자라는 사실, 속으로는 거의 소년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아주 많은 영역에서 ‘전수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우리의 독립적인 태도에서 돌아서야 한다. 삶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거나, 반대로 두려워 움츠러드는 모든 방식에서 돌이켜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남자가 회개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영역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회개’라고 말한 것은 삶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이, 하나님이 필요할 때 잘 나타나시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각, 느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이는 엄연한 불신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자로서 필요한 것을 전수해 주신다는 개념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심지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 같은 영역에서도 말이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이끌어 주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려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남자로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라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나아가, 다른 남자들과 관계 맺는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남자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 고민하는 아버지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이 변화는 남자의 삶이 진정한 남성성을 전수받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시작된다. 소년의 삶에서든 성인 남자의 삶에서든 하나님이 주로 하시는 일은 그를 가르치시는 것이다. 우리가 힘겨운 문제나 시련, 실패에 대해 오해하는 많은 것은 사실 하나님이 우리를 아버지로서 양육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시려고, 치유하시려고, 우리 안의 거룩하지 않은 것을 제거하시려고 그런 상황을 통과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진정한 남자로 성장하는 모험 속에서 우리를 가르치신다. 


위 글은 존 앨드리지, 『아버지 하나님이 만드시는 남자』(도서출판디모데)의 일부 내용을 발췌, 편집한 것입니다. 


_디모데성경연구원

첨부파일2026_6_9_진짜 남자로 사는 것.docx (27.3KB)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

장바구니

등록된 상품이 없습니다
합계: 0

고객지원

디모데성경연구원은 고객의 의견을 소중히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