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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지도 않는데 용서해야 됩니까? [제 785호 칼럼]
   조회수 61
2026-07-14 09:40:21

‘용서’를 말할 때 흔히, 상처 준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용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가 자기 잘못을 뉘우치기는 커녕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데 그를 용서해주는 것은 그가 스스로 자기 잘못을 깨닫고 뉘우칠 기회를 박탈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그의 유익을 위해서야’라고 말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위한 일이라며 용서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상당히 일리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미 세상에 존재하기도 전에, 영원 전에 택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문제는 적어도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중요치 않았습니다. 존재하기도 전에, 그러니까 죄라고 할 만한 어떤 것이 나에 의해서 생산되기도 전에 용서하셨으니 말입니다. 그 예정의 결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용서의 길을 활짝 열어놓으셨습니다(롬5:8). 

중요한 것은 그 용서를 우리가 ‘받아들이냐 마느냐’입니다. 즉, 우리에게 베풀어진 은혜 앞에서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십자가의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 용서의 은혜에 믿음의 동의를 드리고 회개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회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과 화해하여 하나님으로부터의 모든 좋은 것을 누립니다. 반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화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과 화해하기를 바라시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회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치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적용됩니다. 상처받은 사람 A와 상처 준 사람 B가 있다고 해봅시다. A는 B를,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용서한 것 같이 너희도 용서하라’ 말씀하셨으니 A는 이 말씀에 의지하여 B를 용서하기로 결정합니다. 한편, B는 A에게 용서받은 것을 고마워하며 자기 잘못을 뉘우칠 수도 있지만,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B가 오히려 A를 탓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B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A의 용서를 감사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A와 화해하든지, 용서를 무시하고 A와 서먹한 관계 그대로 지내든지. 무엇을 선택하든 B는 크게 괘념치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B가 A는 자신에게 그다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이처럼 용서와 화해는 구별됩니다. 용서는 화해라는 동전의 한 면입니다. 다른 한 면은 회개(뉘우침)입니다. A에게서 베풀어진 용서와 B의 뉘우침이 만날 때 둘이 관계가 회복되어 화해합니다. 적잖은 이들이 용서와 화해를 구분하지 못해 용서를 극히 부담스러워 합니다. 깨진 관계를 회복하고 화해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해는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상대의 회개(또는 사과)가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 판단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회개 여부와 상관없이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요, 또한 상대가 회개할 때 그를 여전한 사랑으로 다시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상대의 선택과 상관없이 그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창세 전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사랑하신 아버지 사랑을 믿고 그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 뿐 아니라 그를 위하여서도 물과 피를 남김 없이 흘리신 주님의 마음을 앎으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하여 상대를 용서한다면,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원수 사탄의 괴롭힘에서부터 자유롭게 하십니다. 우리의 행함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구원 얻은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게 하셔서 복스럽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상대가 뉘우치면 용서하겠다’는 것은 실상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다면 용서함으로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자유의 역사’를 결과적으로 거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나의 의지나 바람과는 상관없이 나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별것 아닌 것으로 전락합니다. 1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았음에도 내게 빚진 백 데나리온을 탕감해 주지 않는다면 1만 달란트 은혜를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내가’ 고통 당합니다. 내가 1만 달란트의 은혜를 깨달을 때까지 하나님은, 나를 ‘옥졸들’에게 내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마18:21-35).

그러므로 용서하십시오. 상대가 뉘우치든 그렇지 않든 용서하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는 물론, 심지어 존재하기도 전에 우리를 용서하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물론 이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처는 사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에서 흘려진 그리스도의 보혈이, 내 죄의 빚을 모두 갚으신 것은 물론, 세상 모든 죄의 권세를 무력화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누군가가 내게 저지른 죄를 포함한 모든 죄는 십자가에 앞에서 힘을 잃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탕감해주지 못할 죄의 빚은 없습니다. 자유롭지 못할 상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상대의 빚을 탕감해줄 때, 그가 내게 갚아야 할 빚은 하나님께로 옮겨갑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를 공의롭게 다루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용서하기를 선택하고 기다릴 때, 그들이 뉘우쳐 회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할 때까지, 온전한 화해에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용서하고 기다리십시오.


위의 글은 브루스 · 토니 히블, 『내리 용서』(도서출판 디모데)의 내용을 근거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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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디모데성경연구원




첨부파일2026_7_13_반성하지도 않는데 용서해야 됩니까.docx (28.4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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