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Home / 칼럼
page-visual_title

칼럼

글보기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제 787호 칼럼]
   조회수 68
2026-08-20 10:14:05


 

흔히 ‘금강산’하면 북녘 땅의 ‘1만 2천봉 금강산’을 떠올립니다. 동해안의 최북단 통일전망대에서 멀찍이서나마 볼 수 있는 바로 그 산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에도 금강산이 있습니다. 북녘 땅에 있는 줄로만 알던 금강산의 거대한 줄기가 현재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백두대간 줄기는 북한 금강산 비로봉에서 출발하여 군사분계선(DMZ) 부근의 군정령과 향로봉을 거쳐 마산봉 및 신선대로 계속 이어집니다. 미시령을 경계로 남쪽 지역은 설악산, 북쪽 지역은 금강산으로 구분되기에 금강산 신선대는 강원도 고성군에서 오를 수 있는 금강산의 최남단 끝자락입니다. 

금강산의 신선대에 오르면 맞은편의 설악산 울산바위가 거대한 위용을 뽐내며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맞은편, 동해바다의 탁 트인 경관과 붓으로 그린 듯한 하늘·구름· 햇빛의 조화, 속초·고성의 도시경관 등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장관을 연출합니다. ‘장엄하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숙연하게 만들 경외감과 신비감이 울산바위 앞에서 솟구칩니다. 하나님의 크심과 나의 작음을 동시에 자각하며 그 동안 나를 괴롭게 하던 염려와 근심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신성이 깃든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우리의 심령을 치유하기도 하십니다.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반석’으로 고백하며 찬양하는 성경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모세, 다윗 한나, 이사야 등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남겼던 아름다운 고백 말입니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신 32:4a)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삼상 2:2b)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삼하 22:3a)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사 26:4)


한국어에서 ‘반석’이라 하면 표면이 제법 매끈·평평한 바위 정도로 이해되지만 성경의 반석(צוּר)은 바위, 큰 돌이라는 의미뿐 아니라 암벽, 절벽이라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우리 대한민국의 울산바위와 같은 거대한 암석, 절벽, 큰 바위와 같은 것들이 바로, 성경에서 하나님께 빗대어 표현된 ‘반석’입니다.  

이스라엘의 산악 지대에는 커다란 바위와 절벽, 바위틈이 많았다고 합니다. 전쟁이나 추격을 받을 때 이런 곳은 적에게서 몸을 숨기고 피할 수 있는 요새가 되었습니다. 백병전이 주된 전략이던 고대의 전쟁에서는 더더욱 반석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은 반석을 은신처 삼아 사울의 추격을 피했고, 세일산 고산 지대를 살던 에돔 역시 ‘고지대의 반석’이라는 지형적 특성을 살려 자신들의 지역을 천연 요새로 삼았다고 합니다. A.D. 70년, 예루살렘 함락 이후 끝까지 항전하던 유대인들 역시 거대한 반석 위의 맛사다 요새를 최후의 보루로 삼았습니다.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 뿐 아니라 반석은, 비바람 등 악천후를 피해 몸을 숨길 수 있는 거처가 되기도 하였으니 위협하는 상대가 무엇이 되었든, 피하는 자에게 흔들리지 않는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18:1-2)


하나님께서 우리의 반석, 요새, 피할 바위, 방패, 피난처가 되셔서 우리를 지켜주시겠다 약속하십니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을 내내 확언하십니다. 신자 된 우리는 응당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사탄이 공중 권세 잡았음을 주장하며 우리에게 그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이며, 이는 우리의 ‘태생적 죄인’이라는 존재적 한계와 결합하여 증폭됩니다. 사도 베드로가 사탄을 ‘우는 사자’에 빗대어 표현할 만큼(벧전 5:8) 사탄의 정죄는,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든 못하든, 오늘도 여전하며 그 기세가 매섭습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코 살아 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토하고, 삶을 여쭈며, 은혜를 구하지 않고서 하나님을 의지한다 말할 수 없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야 필연 사탄의 영향력에 ‘나도 모르게’ 끌려갑니다. 죄의 종으로 사는지도 모른 채 죄의 종으로 사는, 도둑질 당하는 인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태(?)가 이토록 엄중함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여쭙고 들어 그 다음 발걸음을 내디디는 것보다 내 힘으로, 나의 판단에 따라 행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예기치 못한 어떤 고통, 고난으로 나의 한계를 철저히 마주하는 순간이 아니고는 그러한 삶의 방식을 내버리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힘으로,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이 죄의 본질이요, 죄인 된 우리의 기본값이기 때문입니다(렘 2:13). 

‘내가 하나님을 의지할 의향이 과연 있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나의 하루 중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토하고 삶을 여쭙는 기도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 보십시오. 나아가 그 기도의 시간이 과연 점점 확장되고 있는지,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더 깊어지는지, 그 실증으로서 나의 형제사랑이 얼마나 더 성숙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다면 ‘과연 내가 구원받았는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다면 목양의 울타리 안에서 영적 권위자, 형제자매들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이로써 ‘나는 과연 하나님을 원하는가?’ 자문해 보시고 반석, 요새, 피할 바위, 방패, 산성이 되어 주시겠다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하려는 거룩한 갈망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_디모데성경연구원


첨부파일2026_8_19_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docx (28.9KB)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

장바구니

등록된 상품이 없습니다
합계: 0

고객지원

디모데성경연구원은 고객의 의견을 소중히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