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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물결 [제 744호]
   조회수 42
2024-05-29 15:07:00


 

20세기 후반 모더니즘의 낙관론은 포스트모던의 냉소주의로 변했다. 어떤 학자는 1960년대를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변하는 전환기로 보기도 한다. 1990년대가 되자 모더니즘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하나님이 계시하는 말씀을 거부하는 대신 인간 자율성과 이성을 신뢰한 지 200년이 지난 20세기에 들어서자 상상하지 못할 대규모 유혈 사태와 신념을 넘어선 이념 전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학과 과학적 방법에 회의를 느끼고 전적으로 그것을 배격하기 시작했다.

과학적 합리주의 방법으로 보편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구시대적 근대 사상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더는 인정받지 못했다. 사실이 객관적이성이라는 개념은 집중포화를 받았다. 몇몇 포스트모던 주의자는 인간이 객관적일 수 있다는 믿음을 거부했다. 인간이 객관적 진리를 결정하기 위해 생각해낸 모든 기준은 인간 이성의 주관적 산물인 언어로 표현되는데, 인간의 언어는 문화에 기반하고, 사회에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포스트모던 주의자는 진리에 관한 의구심을 제기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던 주의자는 보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진리를 다양한 사회와 문화 배경에 속한 공동체(또는 종족)에 따라 다르게 결정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시각 때문에 당신에게 진리인 것이 나에게는 진리가 아닐 수 있다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포스트모던 주의자에게 진리란 단지 개인의 취향 문제다. 한 단체가 진리로 믿는 개념이 다른 단체의 진리와 모순된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 모더니즘 시대에는 경험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이 진리와 실재를 증명하는 주된 방법이었다면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문화, 사회적 관점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연장선에서 기독교와 불교는 각각의 문화적 배경에서 똑같이 참된종교다. 포스트모던 주의자는 이 두 종교 모두 인간 사회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누가 한 집단의 실재에 관한 개념이 옳고 그른지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포스트모던 주의자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 진리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단체를 독선적이고 억압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모든 종교와 이념이 똑같이 참이라면 누구도 어떤 종교나 이념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다른 집단의 가치와 윤리에 관용하지 않는 태도가 가장 큰 죄이다. 여기서 관용이란, 개인이 믿는 진리에 따라 살아가는 허용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진리가 나의 진리와 똑같이 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에서 진리에 관해 합의가 이루어졌고, 문화적으로 상황화한 언어로 표현되었다면, 아름다움이란 주관적일 뿐 아니라 동시에 참된 것이 된다. 포스트코더니즘에 따르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는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성과 다문화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은 객관적 기준의 존재를 부인했다. 서구 사회가 비유럽 문화와 사상을 혹독할 정도로 평가 절하해왔다는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비판이 생긴 이유는 전통 기독교가 부당한 억압과 박해를 저질러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억압은 옳고 그름에 관한 다른 관점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부당한 박해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적 관점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포스트모던 주의자에게는 편협하고 오만하게 비칠 뿐이다.

전근대 서구 문명(중세 시대)에서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 곧 진리를 초자연적인 하나님과 이 세상을 향한 그분의 뜻 안에서 찾았다. 근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에게서 진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에 이르자 사람들은 절대적 진리의 기준을 거부해버렸다. 단지 특정 공동체가 자신에게 맞는 기준을 결정할 뿐이었다.

포스트모던 주의자에게 실재란 인간이 고안해낸 사상(창조물)이다. 만약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복합적인 실재들의 영역 안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다. 1960년대에 권위에 질문하라. 그리고 우리 것을 스스로 만들자라고 외쳤다면, 1990년대에는 실재가 무엇인지 질문하라고 외쳤다.

서구 사회는 현재 무엇이 실제 참인가?”와 같은 과거의 질문을 답습하고 있다. ‘인간 스스로 생명체가 무엇인지를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필연적으로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는다. 자유를 이처럼 이해하면 낙태뿐 아니라 유아 살해도 정당화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2000년에 대법원이 합법화한 부분 출산 낙태는 유아 살해의 다른 말에 불과하다. 유아 살해가 합법화될 수 있다면 대량 살상은 시간문제이지 않겠는가?

이 같은 이유로 영원불변한 성경적 세계관을 다음 세대에게 전수하지 못한다면 개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영역에 상상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다음 세대를 성경적 세계관으로 가르치고 이 세계관이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방법을 보여줄 기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위의 글은 크리스천 오버먼, 어섬션 (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4-05-29_변화의 물결.docx (16.9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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