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이 무엇을 자랑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마다 자신에 대해서 자랑거리를 가지고 살아간다. 혹, 입으로 자랑하지 않을지라도 은근히 마음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은 미모를 자랑하고, 어떤 사람은 학력을 자랑하고, 어떤 사람은 부와 지위를 자랑한다. 사람마다 모양은 달라도 한두 가지의 자랑거리가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자랑거리가 딱 한 가지 밖에 없는데, 그것이 ‘십자가’라고 한다. 그는 ‘내가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느니”(갈 6:14) 라고 했다.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하지 않고, 십자가를 빼면 내게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내게는 자랑할 것이 전혀 없는데,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겠다는 고백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사도 바울 자신이 정말 자랑거리가 없어서 그랬는가? 아니다. 만일 이 세상을 살다간 모든 인류 가운데 가장 완벽한 자랑거리를 가지고 산 사람이 누구냐고 한다면 바로 사도 바울일 것이다. 신앙적인 면에서, 사회적인 면에서, 모든 면에서 완벽한 자랑거리를 갖춘 그가 왜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을까?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바로 십자가에 의해서 삶이 바뀌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속박으로부터 자유케 하는 십자가
사도 바울은 구원받기 전의 예수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겉모습이 훌륭한가에 상관없이 산송장과 같다고 말한다.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말씀을 묵상하고 고민하며 애써야 한다. 십자가는 무엇인가? 십자가는 이 세상의 헛됨을 보여준다. 세상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을 사망의 길을 보여준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좇아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갈 수 있을 것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누구든지 이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마음을 열고 십자가를 받아들인 자는 이 세상의 잘못된 시스템, 사단의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꺠달은 사람 치고 무엇을 더 자랑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 세상의 속박,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는데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의 속박에서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가 할 수 없던 이 세상의 속박을 친히 끊어주셨다.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닫는다면 어찌 남은 평생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왜 십자가를 자랑해야 하는가? 십자가만이 세상의 속박에서 우리를 자유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온전히 새롭게 하는 십자가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나름대로 여러 가지 계획들을 세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늘 연말이 되면 후회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 무엇이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는가? 종교가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많은 종교 생활, 수 없는 치성을 드려도 우리는 새로워지지 않는다. 도덕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가? 율법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가? 우리의 노력이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할 수 있는가? 아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노력이나 종교, 율법으로 새롭게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왜 새로워지지 않는가? 왜 이렇게 많은 노력을 하고, 많은 종교를 지키고, 율법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데도 새사람이 되지 않을까? 이유는 하나이다. 바로 우리가 병든 것이 아니라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약간의 치료가 아니다. 죽은 자에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다. 단순히 치료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것이 필요하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이것을 경험하였다. 그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그러나 되지 않았다. 그런나 어느 날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십자가의 복음을 깨달은 순간, 그는 완전히 새사람이 되었다. 왜 우리가 십자가를 자랑해야 하는가? 십자가만이 우리를 온전히 새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며, 온전한 새사람으로 만든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참 평안과 긍휼을 주는 십자가
어떤 사람들은 흔히 예수 믿는 것은 곧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천국만 보장해주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죽음 이후의 생활만 보장하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서의 생활의 변화를 의미한다. 어떤 변화인가?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는 마음에 참 평안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참 긍휼을 얻는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나?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긍휼을 얻고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별 짓을 다한다. 그러나 성경은 노력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그것을 해결해 주셨다. 우리가 노력해야 할 그 모든 노력의 결과를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않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6:13~14). 율법을 추구하는 자들, 종교를 추구하는 자들은 여전히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얻고 평안을 얻고 긍휼을 얻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그것을 얻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