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가 학생들에게 주관적 삶의 만족도를 0점(최하)~10점(최고) 척도로 물은 결과, 한국 학생들 평균 점수는 6.36점으로, OECD 28개 국가 가운데 터키(6.12점) 다음으로 낮았다. 비(非)OECD 국가를 합친 48개국 중에서도 터키 다음 최하위였다. 또한 한국 학생들은 최고가 되고 싶다는 성취동기가 매우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내 반에서 최고의 학생이 되고 싶다'는 학생이 80% 이상으로, OECD 평균(59%, 65%)보다 크게 높았다. 동시에 학교 공부를 하면서 긴장하고 걱정하는 비율도 다른 국가보다 높았다. '학교에서 나쁜 성적을 받을 것이 걱정된다'는 학생이 75%(OECD 평균 66%)에 달할 정도로 말이다.
평균적으로 공부 시간이 길면 학업 성취도는 오히려 떨어지는데 한국은 유일하게 공부 시간이 긴 학생들이 삶의 만족도와 학업 성취도 둘 다 높았다. 그 이유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할수록 부모나 선생님에게 관심과 칭찬을 받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수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의 삶의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 자녀들의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리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을 이끄는 부모 세대이다. 공부를 잘하는 것이 당연히 칭찬받을 만한 일이겠지만, 부모 세대의 칭찬이 공부 잘하는 것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아이들은 공부 잘 하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가치인 것으로 자녀들은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 교회는 다음 세대를 경건하게 성경적 가치관으로 세워가기 위해서 많은 관심과 함께 고민을 하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급변함에 따라서 각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가 그 변화에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다. 사회에 선한 영향을 주던 교회가 도리어 세상의 영향을 받으며 그 세상을 좇아가는 모양새이다. 영적으로 보면 점점 어두워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마치 구약의 사사 시대처럼 말이다. 사사 시대는 어른 세대가 사라진 후 나타난 다음 세대가 완전히 다른 세대가 됨으로써 어두운 시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사사기 2:7~10에서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7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다음 세대를 책임져야 할 부모 세대가 그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면서 이미 다른 세대가 되어 버린 부모 세대는 다음 세대를 책임지고 세워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없는 악순환은 반복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부모 교육을 강화하라.
예전에 인기 있었던 TV 프로그램 가운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있었다. 여러 가지 문제를 드러내며 통제 불능의 아이가 완전히 새로운 아이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아이가 달라진 것은 그 아이를 대하는 부모가 달라지고 변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을 놓치지 말자. 부모 훈련 없이 자녀 양육은 이루어지지 않기에 부모의 변화와 성숙에 힘을 쏟아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 세대가 먼저 다른 세대가 되지 말아야 한다. 사는 날 동안 여호와만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부모들은 여호와만 섬기지 않는다. 아니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여호와를 그들을 섬기는 자로 전락시키고 있다. 여호와의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 경제 성장이 가져다주는 삶의 여유를 조금이라도 더 누리기 위해 일에 몰두한다. 그것이 자녀를 위해 더 많은 기회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바쁘다. 시간이 없다고 한다. 주일에 예배 한 번 드리는 것도 버거운 듯 예배를 마치면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이러한 부모 세대의 흐름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중에는 “사람들이 안 모인다” 혹은 “모이기 힘들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교회는 이러한 흐름에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훈련이 없이는 변화가 없고 그 훈련의 과정 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본질적으로 알아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강조하고, 설득하고, 애원하고, 호소하라. 도전하고 강권하여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삶의 터와 기준이 되도록 부모를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세대로 세우라.
둘째, 교사를 세우는 일에 투자하라.
다음 세대를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사람이다. 자녀 양육과 훈련에서 쉽게 속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좋은 교육 환경이나 도구가 교육에서 중요하긴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비전 센터나 교육관, 분반 공부를 위한 공간, 인테리어, 화려한 조명과 음향을 갖춘다고 다음 세대가 경건한 하나님의 세대가 되지 않는다.
왜 여호수아 이후에 이스라엘의 다음 세대가 완전히 다른 세대로 나타났는가? 하나님을 섬겼던 여호수아도 죽고 하나님이 행하셨던 크고 놀라운 일을 경험한 장로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소위 다음 세대라는 자녀에게 경건한 삶을 살고 보여 주며 훈련시킬 인생의 선배이자 선생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진정으로 고민하는가? 다음 세대를 경건한 하나님의 세대로 세우는 것이 단지 공허한 외침이나 명분이 아니라면 교회는 교사를 세우는 일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정해야 한다. 그들을 격려하며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답을 찾아 가라. 교회가 교사를 세우는 일에 실패한다면 교회 교육을 통한 자녀 훈련 또한 실패할 것이다. 이것은 악순환의 시작이다. 이미 우리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셋째, 자녀를 하나님의 방식으로 양육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자녀를 향하여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의 방식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이다. 자녀 양육의 성공 여부는 자녀가 어떻게 되었는가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자녀를 향하여 어떻게 했는가로 평가된다. 세상은 자녀의 성취로 부모와 자녀를 향한 평가가 이루어지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것으로 부모가 청지기로서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준과 가치에 사로잡힌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과 성경적 가치로 무장한 자녀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바벨론과 같은 세상 한복판에 우뚝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들로 하여금 세상을 좀 더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더 나은 기능과 직업을 갖도록 훈련하는 것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교양’을 함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교양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제시된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와 그 기준에 부합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훈련’하여 습관화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최고의 우선순위가 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교회는 다음 세대를 위한 방법론을 잠시 내려놓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꼬여 버린 혼잡한 상황에서 좀 더 단순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붙잡고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교육과 그에 따른 방법론에 성경적 가르침을 근거로 저항해야 할 때이다. 우리 사회가 하루 12시간을 학교에서 지내게 하며 그것도 모자라 주말에 학원으로 자녀들을 떠미는 이유는 무엇인가? 부모는 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가? 다음 세대를 세운다고 하는 교회는 왜 좀 더 강력하게 저항하지 않는가? 다음 세대를 책임지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