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일 : 2014/08/11 17:21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며,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 이다. 이 사실을 부인할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선언에 우리 모두가 100%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강단과 공동체의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복잡하기만 하다. 이 복잡한 심정과 현실의 긍정적 변화를 위한 키(key)는 역시 지도자들에게 달려 있다. <본질이 이긴다>란 책을 통해 목회자들과 독자들에게 강력한 도전을 주고 있는 김관성 목사는 늘어가는 여러 교회와 모임에 초청받아 말씀을 전하는 기회 속에서 느낀 솔직한 감정을 Facebook에 옮겨 놓았다.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함께 공유하며 참 그리스도인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 모두가 함께 진지한 고민을 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본질이 이긴다>를 출판하고 난 후에 제법 많은 교회와 모임에서 설교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에게는 아주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환대를 받는 차원을 넘어서는 복된 경험들이 저의 영혼안에 생겼습니다. 그 귀한 시간들을 마음속에 정리하면서 느꼈던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함께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1. 현재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회중들은 중생과 회심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예수 믿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이지요. 분명히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각종 활동을 하고 있지만 성경적 의미에서 거듭난 사람들의 수는 한 교회와 모임 안에 절반 이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전도, 선교, 봉사, 헌신, 성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들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단적인 예로, 목사나 신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하나가 있는데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교회 일을 조금만 깊이 참여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느끼는 정서입니다. 여러 곳에 초청되어 설교하면서 저는 이것과 관련한 답을 어느 정도 얻었습니다. ‘중생과 회심을 체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교회를 다닌 시간으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려는 사람들에게 변화됨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교회 안이 땅 끝이다!”는 외침은 단순히 선동적인 구호가 아닌 것 같습니다.
교회학교, 학생회, 청년회를 담당하고 있는 사역자들은 이 부분과 관련하여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다음 세대’를 수백 번 외치고 준비해 본들 모든 대책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 자명합니다. 아픈 이야기지만 장년들의 영적인 상태도 그렇게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제적으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 설교가 아닐까요? 수학 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의 모습이 오늘날 교회의 현주소가 아닌지... 정말 안타깝습니다. 2. 신앙의 경향들이 거의 자아의 만족이나 하나님을 수단화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신자 됨의 모습으로 자신들의 신앙을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진심으로 믿은 것을 근거로 하나님의 능력을 이 땅에서 맛보고 싶은 욕망들이 아주 강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쉽게 말해 자기 자신을 기독교 신앙을 통해서 증명하고 싶은 것이지요. 우리 앞의 세대의 신앙을 ‘기복신앙’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자신들도 그 자리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의 정체성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것에 능숙할 뿐이지 성공과 형통을 향한 열망은 더 강렬해 보였습니다. 이렇다보니 성경에 근거한 본질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던지면 얼굴 표정들이 굉장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더군요. 메시지 자체가 부담이 되어서 그럴 수 도 있고, 말씀에 근거해 볼 때 자신들이 힘 있게 추구해오는 신앙의 방향이 거짓된 것임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는 고통 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이 거센 흐름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이켜 지는 것은 작금의 교회가 동원하고 있는 이런 저런 프로그램으로는 거의 불가능 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뾰족한 대책이 보이지 않은 채 떠나오는 저의 마음도 굉장히 무거울 때가 많았습니다.
3.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 보다 감동적인 이야기나 간증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 길게 성경을 설명하고 그것과 연관된 이야기를 전개하면 청중들의 분위기가 금방 다운이 되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유머나 삶의 스토리를 이야기하면 분위기가 금방 반전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 것에는 관심과 열의가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웃기거나 울려야 다시 불러 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설교하는 당사자도 쉽게 마음을 팔아 버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을 타협함 없이 버티고 이겨내는 설교자는 가련함과 초라함으로 보복 받을 것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어쩌면 인기 없는 설교자가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증거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거의 확신으로 이어졌습니다. 힐링과 감동도 중요하지만 그것 자체를 위해 준비된 메시지는 하나님 말씀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상당히 많은데, 설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모두 그 일에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는지 한 번 뒤돌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하튼, 교회 안에서 피상성과 재미의 가치가 진지함과 중요함의 가치를 이기고 있는 것은 객관적 사실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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