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란 말이 있다. 어떤 이들은 “가방”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즈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 한다. 그래서 더더욱 성형이 대세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패션의 추구는 끝이 없다. 만족도 없다. 옷장에 옷이 많이 걸려 있고, 신발장에 신발이 많이 놓여 있어도 늘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패션이다. 패션이란 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기 위함인 것인데 이제는 패션을 위한 패션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신분에 어울리는 패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로서 자기 정체성에 맞는 옷을 잘 입고, 신앙의 아름다움은 물론 그리스도를 더 돋보이도록 하기 위한 패션 감각의 개발과 그것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 골로새서 3장은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며 사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패션, 참 멋의 추구를 위한 3가지 지침을 주고 있다.
첫째, 위의 것을 찾아라. (골 3:1~4)
패션의 최첨단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패션의 본 고장에서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듯이,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한 삶을 사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위의 것, 즉 하늘에 생각을 고정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가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위의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1절에 “위에 것을 찾으라 keep seeking the things above” 즉, “위의 것에 마음을 두라. 애착을 가지라”라는 것이다. 2절에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set your minds on things above”라고 말하고 있다. “생각과 마음을 그분께 고정하라”는 의미다. 위를 향하여 애착을 갖고 마음을 고정하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는 2~4절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곳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이며(v.2), 우리가 이미 죽었고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고(v.3), 언젠가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 말합니다(v.4).
요즈음 당신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정말,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함을 고백하는 제자로서 위에
것들에 생각과 마음을 고정하고 있는가? 정말 그런가?
둘째, 땅의 것을 벗어라. (골 3:5~11)
5절은 구체적으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한다. 땅에 있는 동안 여전히 우리 몸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는 것 중 위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제거하라는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자기 욕심”에서 기인한 것들이다. 음란이란 “비도덕적인 성행위”를 말한다. 부정이란 “성도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사사로운 욕심이 있다. 악한 정욕도 있다. 탐심도 말하고 있는데 “탐심은 곧 우상숭배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탐심을 왜 우상숭배라 말했겠는가? 탐심은 더 많은 것을 얻음으로써 자신을 만족하게 하려는 욕망으로서 그 배후에는 모든 것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었는데(골1:16) 탐심은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도록 작용하기 때문에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천천히 끓어오르며 쌓여가는 감정인 분함과 불꽃처럼 강력하고 신속하게 타오르는 감정인 노여움. 다른 사람을 해하려는 악하고 고의적인 의도인 악의와 상대방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비방. 저속하거나 독설적이어서 입에 담기
도 부끄러운 말이나 서로를 속이는 거짓말들을 벗어버리라 말한다. 이것들이 하나님의 진노에 임하게 하는 것들이기에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기에 이러한 것들을 벗어버려야 한다.
셋째, 어울리게 입으라. (골 3:12~14)
위의 것을 이 땅에 펼치기 위해 땅의 것들을 벗어 버렸으니 그리스도의 것으로 새롭게 옷을 입어야 한다. 가난한 자나 고통당하는 자들에 대한 공감인 긍휼,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고 도와주려는 마음인 자비, 자신을 정확하게 평가하는 겸손, 절제된 힘(power under control)인 온유, 불공평이나 상처를 받는 상황 속에서도 복수하지 않고 견디는 능력인 오래 참음, 단순히 견디는 것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가슴으로 품고 상대방에게 다가가는 용서, 모든 한계를 뛰어넘으며 서로를 가장 강력하게 접착시켜주는 접착제(bond)인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성도들로 하여금 이타적 삶으로 이끄는 것들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들이기도 하다. 관계를 파괴하는 땅의 지체들이 아닌 관계를 세워주는 최고의 패션이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를 향하여 먼저 보여주셨던 것들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 고백하는 제자가 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원래 인간이 창조될 때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공유하신 성품들이었다. 타락에 인하여 그러한 성품들에 때가 묻은 더러운 옷을 입고 살았었는데, 지식에까지 새로워진 사람으로 변화되었기에 다시 그것들을 추구하며, 그 성품을 옷으로 삼아 삶의 패션을 아름답게 드러내야 한다.
우리가 이와 같은 것으로 우리를 단장하기 위해 더 나은 환경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조금만 더 벌고 안정되면, 조금만 더 나은 자리에 앉으면, 조금만 더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하는 더 나은 환경이나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새 사람의 옷으로 입으면 된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고,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으며, 다가올 그 나라와 영광을 맞이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우리의 본향인 위를 생각하고,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아랫것들을 벗어버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는 하늘의 것들로 단정하게 입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입어야 할 옷을 입고,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는 최고의 패션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정말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다고 확신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