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며 성도와 교회는 여러 모양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분주한 한 주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행사로 그친다면 감사절의 진정한 의미가 약해질 것이다. 메튜 헨리는 “감사를 드리는 것(thanksgiving)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감사하는 삶(thanks-living)은 더 좋은 것이다”며 진정한 감사는 우리의 삶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말했다. 그렇다. 진정한 감사는 신앙이며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감사가 신앙과 삶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먼저 감사의 마음을 경작해야 한다. 좋은 땅이 좋은 열매를 맺게 하듯이 좋은 마음이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건을 추구하라
바울은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목적과 전제를 반박했다(딤전 6:6). 그들은 돈을 사랑했고 돈을 개인의 성공과 행복으로 가르쳤다. 성공과 개인의 행복은 물질적인 번영이나 대중의 찬사 등에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바울은 삶의 진정한 플러스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물질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유익이라고 했다. 여기에 중요한 두 단어가 있다. 자족과 경건이다. 먼저 경건은 무엇인가?
경건이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가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불행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추구한다는 것은 가장 큰 재산이며 특권이다.
경건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분으로부터 배운 그분의 성품이 우리의 사는 방식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경건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며 섬기는 하나님의 요구이다.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삶이며 예배와 적절한 행위로 드러나는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다.
이 경건은 유익을 준다. 이 경건은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큰 이익이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경건이 큰 이익 배당금을 주는데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는 자들에게만 해당한다. 디모데전서 4장 7~8절은 “경건의 연습을 하라고 하면서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태도, 그의 품성을 닮으려고 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삶에 유익하다. 현재의 삶뿐 아니라 내세의 삶도 개런티 하는 유익이 있다. 감사하는 마음을 경작하려면 무엇보다 경건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추구할 때 감사의 마음이 생긴다.
자족하는 습관을 길러라
헬라와 로마 철학자들에게 만족이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의 자원에 의존하는 능력이었다. 그들에게 이상적인 사람은 독립적인 사람이고 아무것도 다른 사람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헬라의 스토아학파들이 ‘자기 충만’을 나타낼 때 이 단어를 썼으나 성경은 자신의 충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은 자신의 충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충만을 가르친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자족은 체념이 아니라 만족이다. 우리의 야망의 굴복이나 현상유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의 목적에 복종하는 것이다. 진정한 자족은 자기만족이나 수동적이 되거나 삶의 고립이나 이탈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가두는 모든 상황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경건은 경제적인 상황과는 전혀 상관없이 내적으로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만족(지족)과 조화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이익인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만족하고 내적 평안함을 누리며 경건을 유지한다면 그로부터 엄청난 유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자산을 소유한 것이다. 자족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 먼저 다음의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탐심의 위험을 경계하라.
감사가 없고 불평하는 이유는 주로 탐심 때문이다. 탐심이란 더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끊임없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눅 12:15)라고 하셨다. 탐심이란 인간의 보편적인 죄악이다. 우리의 이기심을 살찌우는 죄악이다. 그리고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 3:5)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나 탐심의 죄는 고백하지 않는다. 거짓말, 시기. 음욕, 험담, 용서하지 못함, 분노 등 우리는 늘 탐심을 경계하며 탐심을 가질 때마다 회개해야 한다.
돈에 대한 탐심을 가지면 대부분 파멸의 길로 간다. 몇 해 전 미국 신문에 지금까지 복권 당선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조사했는데 그들 중 10퍼센트 만이 만족한 삶을 살고 90퍼센트는 전보다 못한 삶을 산다고 한다. 전보다 더 가졌는데 왜 더 못사는가? 탐심 때문이다. 탐심은 우리의 삶을 전복시킨다.
돈을 사모하는 자들의 결과는 믿음을 떠나게 된다. 근심으로 자기를 찌른다. 고통에 빠진다. 탐심은 우리의 믿음을 질식시킨다. 믿음을 파괴한다. 탐심은 자신을 스스로 파멸시키는 악이다. 탐심이 있는 한 감사하지 못한다. 진정한 감사와 만족은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소유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물질이 주는 즐거움은 잠깐이다. 계속 가지려고 할 때, 소유해야만, 더 가져야만 만족하는 인생은 결국 그로 인한 온갖 근심과 고통에 휩싸이게 된다. 믿음을 파괴하게 되고 파멸에 이른다. 왜, 결코 다 가질 수 없고, 가져도 욕심이 끝이 없고 물질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탐심의 위험을 경계하고 탐심을 버릴 때만이 감사의 마음이 싹트기 시작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평소에 경작해야 한다. 곰곰이 생각하면 감사할 것밖에 없다. 이 감사의 계절에 감사하자. 받은 복을 세어보자. 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으로 인해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