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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극복하라 [사람을 세우는 사람 231호]
   조회수 850
2019-09-10 17:13:52

등록일 : 2013/08/27 11:45



<게으름을 극복하라>

 

다음은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게으름 지수이다. 10개의 문항을 통하여 자신의 게으름을 측정해보자.

 

1. 아프지 않은데 온 종일 누워서 TV만 시청한 적이 있다.

2. 집에 혼자 있을 때 식사준비가 번거로워 한 끼 정도는 굶어본 적이 있다.

3. 전화가 왔는데 움직이기 귀찮아서 시끄러운 벨 소리를 참아내며 받지 않은 적이 있다.

4. 사흘 동안 머리를 감지 않고 버틴 적이 있다.

5. 가끔 칫솔질이 귀찮아서 자일리툴 껌으로 대신한 적이 있다.

6. 발가락으로 선풍기나 리모컨을 작동시킨 적이 있다.

7. 방바닥에 머리카락이 엉켜서 굴러다닌 적이 있다.

8. 약속시간에 맞추어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그 시간까지 누워 있다가 꼭 조금씩 늦는다.

9. 옷을 벗어 구석에 던져 놓은 적이 있다.

10. 책상위에 마시던 컵이 다음날까지 놓여 있다.

 

만일 이 질문 중에서 5개 이상 해당이 되면 게으름의 문제가 있다고 한다.

 

게으름은 무엇인가?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게으름은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에너지가 거의 고갈된 상태”라고 하였다또한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는 “게으른 자의 머릿속은 악마가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하였다.

그럼성경은 게으름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성경의 게으름에 대하여 말하기 전에 어떤 분의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이옥순(연세대 연구교수이자 인도문화연구소장교수는 그의 저서 '게으름은 왜 죄가 되었나'에서 게으름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의 주장한 바로는“게으름은 시대와 종교에 따라 인식이 달라지는데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며,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 한국중국일본에서 게으름은 느림과 무위가 연계된나태하다고 부를 정도의 여유로움이었다"고 말한다그러면서 그는 게으름이 죄악시된 이유는 서양의 문화 때문이고그 뿌리는 ‘성경’이라는 것이다왜냐하면사도 바울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었고 신학자 칼뱅은 “신은 게으른 자가 빵을 먹는 걸 저주한다”고 설교했고결국 그런 것들이 모여 기독교의 ‘근면 윤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한마디로 인간의 게으름을 기독교가 죄라고 정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게으름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성경 이외에도 다른 종교의 책을 살펴보면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먼저 이슬람의 책 코란을 보면 "그들이 바치는 어는 것도 수락되지 아니함은 그들이 하나님과 선지자를 불신했고 예배를 하지 아니하고 게으름을 피우면 증여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라(타우바장 54)”라며 예배의 태만이 하나님께서 기부를 받아주시지 않는 이유가 된다고 하였다그리고 이슬람교에서는 흡연이혼게으름은 ‘피해야 하는 것’으로 정해놓았다.

또한유교의 주역(周易)에서는 ‘자강불식’ 즉“하늘의 운행은 굳세니 군자(君子)는 그것은 본받아 자신을 강하게 하여 쉼이 없다”고 하면서 천도를 본받기 위해서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음을 말한다그뿐만 아니라 불교의 수행자가 지녀야 할 덕목을 기록한 법구경에서는 “게으르지 않음은 영원히 사는 길이요게으름은 죽음의 길이다게으르지 않은 이는 죽지 않겠지만 게으른 이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어리석어 슬기 없는 이는 게으름에 빠지고슬기가 있는 이는 귀중한 재산을 지키듯 부지런함을 지킨다”며 게으름을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라 했다.

그러므로 게으름은 시대나 종교에 따라서 인식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기독교가 주도적으로 정죄한 것도 아니다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다성경은 나쁜 건 나쁜 것이기 때문에 그저 나쁜 것이라고 바로 말하고 있는 것이고그 게으름은 ‘죄’가 들어오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게으름의 달인

그럼 성경에서는 게으름이 가져다주는 ‘죄’에 대한 교훈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사무엘상에서 게으름의 달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그의 장기는 의자에 앉아있기취미도 의자에 앉아 있기개인기도 앉아 있기였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의 경고(삼상 3:13)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식들이 잘못된 길로 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다그런데 그의 그런 영적 게으름은 게으른 습관에서 굳어진 것이다사무엘상 1장을 보면한나가 마음이 괴로워 통곡하며 서원할 때 그는 마땅히 위로하며 도와주었어야 하는데넋을 잃은 채 게으르게 앉아 있었다그래서 그는 판단력과 분별력도 없어 한나를 “취했다”며 나무랐다또한그는 또한 법궤가 빼앗기는 사고(삼상 4:14)가 발생하였어도 그저 의자에 앉아 있었을 뿐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통곡하고 회개했어야 하는데 그저 앉아 있기만 했다이런 그는 최후도 그의 의자에서 맞이했는데“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삼상 4:18)며 게으른 자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소명을 회복하라

가톨릭 신학자 매튜 폭스(M. Fox)는 “게으름의 처방이 무엇인가게으름의 처방은 부지런해지자는 결심이 아니다게으름을 치료하려면 당신 안에 있는 불꽃을 다시 발견하라”고 말하며 게으름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말하였다.

사사기 4장을 보면 한 여인이 등장한다사람들은 그녀를 이야기할 때 “하나님은 얼마나 사람이 없었으면 여자를 사사로 세웠을까?”라고 오해한다그러나 그녀의 평범 속에서 그녀만의 비범함을 발견할 수 있는데그것은 ‘드보라의 종려나무’(삿 4:5)라는 구절에서이다왜냐하면성경은 드보라가 그냥 한 ‘종려나무’ 아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재판한 것이 아니라‘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라 말하며 그 종려나무에 대하여 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그 종려나무는 어떤 종려나무였나‘드보라의 종려나무’였다이것은 그 종려나무와 드보라와의 관계를 나타내 주는 말이며더 나아가 드보라의 삶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왜냐하면그녀는 하나님께 받은 소명이 분명했기에 종려나무 아래 거주하며 소명을 다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오랫동안 종려나무 아래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많은 사람을 만났고그것이 소문이 나 어느덧 그 자리는 드보라만의 자리가 된 것이고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결국 종려나무가 된 것이다.

드보라의 소명이 그렇게 그녀를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만들었고그녀는 사람과 하나님께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나의 종려나무는 무엇인가?

어떤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허전함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그 자리를 보고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그곳에 그 사람의 꾸준함과 부지런함이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인정받는가물론 뛰어난 능력을 가춘 사람이겠지만 그 못지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꾸준하거나 부지런함을 가진 사람이다.

수천 년 동안 물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자리를 보면 바위가 패여 있다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나그것은 꾸준함부지런함이다그동안 떨어졌던 물을 다 합쳐서 한꺼번에 바위에 떨어뜨린다 해도 그러한 구멍은 생기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기에는 꾸준함부지런함이라는 단어가 항상 들어있다꾸준함부지런함이 곧 성공의 길이다반면 게으른 습관은 실패의 길이며죄악의 통로이다게으름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 우리는 소명을 회복해야 한다.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며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준 드보라의 성실한 모습이 우리들의 삶의 자세가 되기를 바란다.

내가 있는 이곳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그곳이 바로 나와 우리의 ‘종려나무’이다.

첨부파일BiblicalTamar27.jpg (171.1KB)2013_08_27_게으름을_극복하라.docx (20.4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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