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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세우는 사람 217호] 기준선으로 살라
   조회수 262
2019-09-10 16:35:39

등록일 : 2013/05/22 14:10 





기준선으로 살라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당신이 이 땅을 떠날것에 대한 예수님의 언급하셨다( 14:1~3). 물론 이 언급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엔 제자들이 뭔가 다른 느낌을 받은 것 같다. 떠남에 대한 불안함도 불안함이지만,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 혹은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시는 모든 내용들이 자신들의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이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이 정말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는지 제자들이 무척 근심하는 반응을 보이자, 예수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근심’. 이것은 불확실성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불확실성으로 인한 근심에 사로잡히면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한다. 이러한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의 불안함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신다. 갈길을 몰라 헤메이는 자들을 위한 틀림없는. 창조자이시며 모든 지식의 근본으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을 위한 오류없는 진리. 또한 사망을 이긴 영원한 생명되시는 자신을 내어주시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아직도 잘 몰라한다. 그래서 근심한다. 불안해 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하면서 말이다. 예수님이 이들에게 이미 길을 가르쳐 주셨고, 어버지를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길을 모른다,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말하면서 3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10여회에 걸쳐 이미 당신의 정체와 운명에 대해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른다는 반응을 보인 것일까? 딴 생각때문이다. 오로지 자신들만을 위한 생각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깨달음이 없을 수 밖에 없다. 당신은 어떠한가? 3년전 보다 지금 예수님을 더 아는가? 그분이 가신 길을 잘 알고 따르는가? 아버지를 보았는가? 3년이 지난 후에도 동일한 질문앞에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에 비해 훨씬 더 선명한 약속들을 기록된 성경과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통해 간직하고 있는 자들이다. 이러한 우리의 정체성을 근거로 힘겨운 여러 상황과 환경으로 인해 불안해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오실 예수님, 완성될 우리의 처소, 아버지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미래를 소망하는 삶으로 사는 것인가?

1. 미래를 대하라

당신은 어떠한 미래를 기대하고 있는가? 자녀의 미래, 졸업후의 미래, 결혼에 대한 미래, 노후에 대한 미래등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와 관련되어 있지 않은 미래는 의미가 없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그분앞에 앞에 서게 될 자녀를 기대할 때, 졸업 후 노동의 신성함을 수행하며 일터의 현장속에서 선교사적 삶을 살 게될 졸업후의 미래, 로맨스가 전부가 아닌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만나 건강한 가정을 세우고 경건한 세대를 이러가는 결혼에 대한 미래, 삶의 모든 여정을 잘 마무리 하며 그날이 오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맞이하는 노후에 대한 미래가 되어야 미래를 기대하는 것의 의미가 선명해지게 된다. 온 우주의 비밀이 풀릴 그 날을을 기대하는가? 너무나 신비로워 영원히 그 이름을 높일수 밖에 없는 그날을 기대하며 지금의 삶을 사는가?

2. 미래를 비하라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결코 주상적이지 않다. 우리의 미래는 바로 오늘이기 때문이다. 오늘이라는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이 미래를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삶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잘못된 재림신앙에 대한 바울의 조언은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마라”[살전 3: 6,10,13] 는 것이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삶에 대한 권면이었다.

존 맥아더 목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의 생활 방식에 예수님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을 위해 자신의 방식을 포기하고 그에 따르는 대가가 무엇이든 기꺼이 지불하는 것이다" 라 말한다. 그렇다. 이러한 삶이 가능한 것은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오실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미래를 위해 우리는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불안한 현재를 기준되시는 예수님의 삶을 본으로 삼고 극복하며 사는 삶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일지라도 그 분 처럼 좁은 길을 걷고, 진리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부유한 자로 하루 하루를 멋지게 살아야 한다.

3. 미래를 포하라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 우리의 본향이 있음을 분명하고 단호하게 선포해야 한다. 겸손과 긍휼을 가지고 말이다. 인생은 순례이다. 인생이 잠시 머물다 가는 이곳은 일시적인 처소일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처소를 예비하셨다. 천국 아니면 지옥말이다.

여행에서 피곤할 때면 사람들은 집에 가고 싶어한다. 이렇게 돌아갈 집이 있는 것은 여행이지만, 돌아갈 집이 없는 것은 방황이다.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이 예비하신 처소, 저 본향을 향해 돌아갈 수 있도록, 인생을 방황이 아니라 여행으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고 돌아갈 수 있도록 도우라. 예수을 통해 펼쳐지는 미래가 있음을, 그 미래가 다가오고 있음을 선포해야 한다.

영원을 위해 80여년의 세월을 아끼고 지혜롭게 길과 진리 생명을 붙잡고 살것인가? 아니면 80여년의 세월을 화려하게 사는 것을 추구하며 영원을 포기할 것인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고민하게 하며, 그 결론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도록 해야 한다.

당신의 삶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준선이 되어야 한다. 기준되신 예수를 따르는 자로서, 미래를 대하고, 비하고, 포하는 자로서 말이다.

 
첨부파일PastNowFuture.jpg (26.4KB)2013-05-22_기준선으로_살라.docx (30.7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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