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들의 나라를 향한 편지
H.G 웰스의 『장님들의 나라』라는 소설은 “장님들의 나라에서는 눈을 하나 가진 사람이 왕이다”라는 오래된 속담을 인용한 뒤 이를 바꾸어 놓는다. 웰스는 수천 년 동안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잊힌 부족을 발견한 탐험가의 이야기를 썼다. 이 탐험가가 일몰과 무지개의 찬란함에 대해 열심히 설명해주자 시력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로 생각하고 감옥에 가두어 버린다. 그들은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종종 이 세상이 ‘장님들의 나라’인 것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성경의 눈으로 복음의 참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세상은 복음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지 않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어리석어 보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암흑 속에서 복음을 향하여 어리석은 반응을 보이는 자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그들에게 분노보다 연민이 필요하며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 앞을 못 보는 자가 우리의 발을 밟았다고 해서 화를 낼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또한 영적으로 앞을 못 보는 자와 같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요한일서 2:11) 이 말은 우리가 빛의 유익은 모두 누리면서도 여전히 어두움에 거할 수 있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사랑이나 동정 없이 그렇게 행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한 번도 사랑이나 동정 없이 행하신 적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자들을 그와 같이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때가 우리가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잃어버린 사람들이 우리가 사랑을 가지고 증거함으로써 앞을 보는 기적을 받아들이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빛을 따라 살며 어둠에 있는 자들을 위해 등불을 들어 주어야 한다. 장님들의 나라와 같은 이 세상 속에서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비이기적인 사랑만큼 논의의 여지가 없고, 권위가 있으며,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는 것은 없다.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표지(標識)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결하게 하고 용서하는 능력을 느끼고 그것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 것처럼 조건없이 오래 참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때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들 또한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수만 번을 되풀이해도 질리지 않는 방법으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편지가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이 보내야 하는, 아직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받아야 하는 편지이다. 우리가 깊이 사랑할 때 결코 늙지 않는다. 깊이 사랑하는 자는 나이가 많아 죽을 수는 있어도 결코 늙어 죽지는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