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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대신 공감을 [사람을 세우는 사람 311호]
   조회수 332
2019-09-11 12:21:44

등록일 : 2015/03/17 10:10





영국의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처음 출판될 때는 40만 단어를 수록했다그런데 현대사회가 발달하면서 언어의 숫자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지금은 615천 단어를 수록하고 있다사람들이 그만큼 말을 많이 하며 산다는 현상이다그래서 신조어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09 3월에 출간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매우 이색적인 단어 하나가 시선을 끈다영어로 ‘frenemy’라는 단어다이 말은 원래 1953년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최근에 정식 표준어로 사전에 수록된 것이다. frenemy (friend + enemy)라는 뜻은 절반은 친구이고절반은 적이라는 혼성어다즉 사람은 얼마든지 친구이면서도 적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욥과 그의 친구들이야말로 frenemy 관계라고 할 수 있다그들은 먼 거리에서도 고난 겪은 친구 욥을 위로해주러 찾아왔다참으로 우정이 돈독한 친구들이다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은 욥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때려눕히는 적이 되었다어느 순간부터 욥의 친구들은 욥의 아픔을 공감하는 대신 공격하기 시작하는데그 내용이 4장부터 ~ 26장까지 계속 이어진다욥에게 얼마나 가혹한 공격을 연발하는지 갈수록 과격해진다.

욥기에는욥의 친구들이 말하는 것이거의 3바퀴 나오는데어떤 학자는 욥기의 문맥이 3단계로 진행된다고 정리해준다첫 번째 단계는 논의(discuss), 두 번째 단계는 논쟁(debate), 세 번째 단계는 논박(dispute)이다처음에는 부드러운 논의로 시작하여 점점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마지막에는 잔혹한 논박으로 악화한 것이다.

세 명의 친구들이 고통 중에 있는 욥을 얼마나 몰아붙였는지 욥의 얼굴과 가슴에 가혹한 펀치를 무차별 날린다그야말로 집단 구타를 한 셈이다그들이 처음에는 욥을 도와주러 왔으나점점 더 욥에게 해를 끼친다(help to harm).  처음에는 최고 연장자 엘리바스가 욥의 현실에 대하여 공박하기 시작한다특히 엘리바스는 욥의 기개를 꺾으려고 세 차례나 몰아붙인다(4, 15, 22). 그다음에는 빌닷이 옛 성현들의 교훈을 인용하여 욥을 권위적으로 누른다(8, 18, 25). 그리고 세 번째는 소발이 가장 단호하면서도 독선적으로 깔아뭉갠다얼마나 잔혹하고 거세게 너는 고생해야 싸다라고 윽박지른다(11, 20).

우리도 마찬가지다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충고해 주다가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을 위해 말해준다면서 오히려 상처를 준다그야말로 상처 난 부위에 소금을 뿌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그러므로 우리는 상처 받은 사람에게 어떻게 해서는 안 되는지를 숙지해야 한다즉 우리가 어떤 가정으로 충고해주느냐 보다어떤 가슴으로 위로해주느냐가 중요하다이것이 욥기에서 들려주는 중요한 메시지다어떻게 해야 가혹하게 공격하는 대신따뜻한 가슴으로 공감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

 

첫째, 약점을 건드리지 말자(4:3-6)
욥의 친구들은 그동안 욥이 훌륭하게 살아온 점을 칭찬하기보다는 야단부터 한다본문 3절부터 보면 지금 욥이 신앙적으로 약해져 있는 모습을 가혹하게 나무란다그래서 욥이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그동안에는 여러 가지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내라고 상담해주던 자가 이제는 자기에게 힘든 일이 생기니까 스스로 맥을 못 추는 약골이 되었다고 나무라는 것이다.(5)

그들은 욥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며 짓밟는다그들은 욥이 겪고 있는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더욱 가중시키고정신적 고통을 더욱 악화시킨다오늘 우리도 칭찬보다 책망을 먼저 하는 경향이 많다잘한 것을 칭찬하지 않고 잘못한 것부터 지적한다우리는 때때로 작은 잘못을 너무 난도질하여 더 큰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기를 꺾어 놓는 경향이 있다작은 실수를 눈감아주기보다 침소봉대하는 성향이 있다일반적으로 사람에게는 장점이 85%이고약점이 15%이다그러므로 우리는 약점을 무시하고장점을 활성화해주어야 한다잘 못 하는 것을 지적하기보다 잘하는 것을 칭찬해주어야 한다옥에 티를 흠잡지 말아야 한다약점을 보완하기보다는 강점을 육성시켜주어야 한다.

우리는 비난(sarcasm)보다는 받쳐줌(support)이 필요하다이론(logic)보다는 사랑(love)이 필요하다충고(advice)보다는 인정(affirmation)이 필요하다우리는 약점을 지적하기보다장점을 칭찬해주는 따뜻한 격려자가 되어야 한다약점을 공격하여 절망감을 느끼게 할 것이 아니라 아픔을 공감하므로 희망을 품게 해주어야 한다.

 

둘째, 함부로 정죄하지 말자(4:7-11)

욥의 친구들은 욥이 겉으로는 경건한 체했지만남모르게 죄를 범한 것이 있어서 천벌을 받았다고 정죄한다그들은 모두 색깔이 똑같은 안경을 끼고 욥을 심판한다욥이 당한 패가망신은 그가 남모르게 지은 죄 때문에 심판받은 결과라는 것이다그들은 「인과응보의 법칙」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선입관과 편견으로 욥을 정죄한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서슬이 퍼런 자세로 욥을 사정없이 때려잡는다금세기 최고의 성경학자 유진 피터슨이 번역한 「메시지」의 내용은 적나라하다(7~9).

「생각해보게정직한 사람이 쓰레기 더미에서 운명을 마친 적이 있었는가정직한 사람이 망하는 법을 본적이 있는가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악을 밭 갈고 환난을 뿌리는 자는 환난을 거두게 된다네그래서 하나님의 입 기운으로 멸망하고그분의 콧김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된 것이라네.」 이처럼 그들은 비수 같은 말을 쏟아 부었다그들은 고통 중에 있는 친구를 동정하고 위로하기보다그를 마음껏 깔아뭉갰다그들은 상상과 가정으로 욥을 정죄하며 죄를 뒤집어 씌었다욥에게 남아 있는 기력마저 단칼에 베여버린 것이다이처럼 나쁜 충고일수록 상대방을 더욱 의기소침하게 한다.

우리는 간혹 병원에 문병을 가든지 고통당하는 사람을 방문할 때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생각 없이 던지는 말에 자칫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가끔 이런 교우가 있다‘집사님이번에 입원하면서 마음에 가책되는 것이 없으세요?’ 이처럼 은근히 정죄하며 죄책감을 촉구하는 입장으로 말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그런 사람에게는 이렇게 응수하라‘당신 혹시박수나 부채 도사 출신이세요?’

특히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 중에믿음은 좋은데 성품이 좋지 않은 자들이 있다신앙은 좋은데 인간성이 잘못된 자들이다소위 율법주의 신앙이다율법과 의는 있는데 은혜와 사랑이 없다보수적인 신자일수록 인정 없는 도덕주의자가 될 수 있다잔인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그래서 사람을 쉽게 판단하거나 함부로 정죄한다.

나는 신학대학에서 공부했다대부분의 친구가 너무 어린 나이에 전도사로 사역했다그러다 보니 인간성이 균형 있게 갖추어지기 전에 너무 율법적 신앙을 가지는 폐단을 보았다그래서 나는 친구와 함께 동아리를 조직했는데그 이름이 「인간회」이다사역자가 되기 전에 인간부터 되자는 운동이었다매우 좋은 반향을 일으켰다그때 나와 함께 활동했던 친구는 지금 부산대학에서 철학과 교수로 가르치고 있다성품이 참 좋은 친구다그러므로 우리는 신앙과 함께 성품 개발을 힘써야 한다이것이 예수님의 산상설교 메시지다.

사역보다 사람됨이 우선이다일보다 인품이 더 중요하다여하튼 우리는 정죄하는 대신 함께 아파할 줄 알아야한다먼저 공감하고 동정하고 위로해야 한다예수님은 우리를 결코 정죄하지 않으신다우리의 잘못을 비판하거나 심판하는 대신 오히려 긍휼히 여겨 주시고사죄 은총을 베풀어주신다(8:11. 12:47~48). 예수님은 오늘도 공격대신 공감을 해주신다. “얼마나 아프고얼마나 힘드니내가 도와주마!”

 

셋째, 영적으로 교만하지 말자(4:12-5:27)

소위 신앙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무서운 무기는 신앙적 우월감이다누군가 어려움을 당하거나 사고가 나면 가차 없이 윽박지른다신앙적으로 공갈 협박한다. “요즘 기도가 부족해서 그래주일예배 빠져서 사고 난 거야교회 봉사를 안 해서 그래.” 이것이 영적 교만이다.

본문 12절을 보자엘리바스는 자기야말로 영통한 사람으로서 욥이 왜 불행을 당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고 있다고 압도적으로 말한다그러면서 자기 자신의 영적 권위를 은근하면서도 강하게 내세운다그가 계속 반복하여 사용하는 어휘가 있다「내가 보건대내가 알기로내 경험으로는나 같으면」이라는 표현을 수없이 반복한다.

특히 5:8절을 보면「내가 자네라면나 같으면내가 만일 너 같으면」이라는 자기중심적 우월의식으로 말한다이런 신앙적 우월감으로 욥을 기죽이고 있다그래서 엘리바스는 욥을 향해 「이보게」라는 비인격적 호칭으로 그를 윽박지른다(5:17). 우리는 때때로 신앙이라는 명목하에 상대방을 억지로 설복시키려고 한다신앙적 우월감으로 영적 권위를 남용한다이것이 욥기 5 27절의 결론이다「보게나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니 틀림없는 사실이다부디 잘 듣고너 자신을 생각해서라도 명심하기 바란다.

우리나라 성경에서 여러 가지 표현으로 번역한다. “내 말을 잘 듣고 배우라명심하라귀담아들으라잘 알아 두어라.” 지금 피골이 맞닿고 만신창이가 되어 엄청난 고통 중에 있는 욥에게 무슨 지침이 되며 삶의 애환을 나누어주는 말이 되겠는가우리는 상담이나 충고라는 명목으로 자기주장이나 자기 생각을 관철하려고 한다그러다 보니 책망을 위한 책망으로 일관한다충고가 경고와 선고로 간다신앙이라는 명목으로 협박한다우리는 신앙적 우월감으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공격하는 대신 공감을 해야 한다.

욥기의 교훈은 우리에게 너무나 실제적인 가르침을 준다욥의 친구들의 말은 틀린 점이 하나도 없다다 맞다다 옳은 얘기다욥기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려는 메시지는 우리가 비록 옳은 얘기를 해도 그 말이 상황에 맞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오히려 부적절한 말은 상처만 더 크게 만든다.

칼 델리취라는 구약성경 학자는 이렇게 지적한다“욥의 세 친구가 한 말들을 검토해볼 때 그들에게서 틀린 점을 찾아낼 수가 없다.” 그런데 그들의 지적이나 충고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옳은 말이라도 유익 되지 못할 수 있다맞는 말이라도 선하지 못할 수 있다그 핵심은 단 하나다사랑이 없기 때문이다만고불변의 진리를 말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음에 불과하다청산유수로 말을 엮어낼수록 오히려 상처만 더 크게 만든다.

나는 이따금 이렇게 생각한다. ‘눈물 없이 하는 말일수록 눈물을 쏟게 한다.’ 우리는 일으켜주고 세워주는 말을 해야 한다몇 마디의 말이라도 따뜻한 가슴으로 하면 치유 효과가 있다현대인들에게는 이해와 격려그리고 특히 가슴 따뜻한 공감이 필요하다상처와 아픔 속에 사는 사람들일수록 동정과 위로의 말을 목말라하고 있다지금 어려움을 당해 힘든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는 갑론을박의 설명이 필요치 않다공감과 위로가 필요할 뿐이다고통 당하는 자에게는 그 고통을 함께 나누는 진정한 동정심이 필요할 뿐이다우리는 사랑 없는 공격 대신따뜻한 가슴으로 공감하자-조봉희 목사(지구촌교회 담임디모데성경연구원 자문위원)-

 

첨부파일empathy-integrity.jpg (49.2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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