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암 발생률이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그 발생률은 갑상샘암, 위암, 대장암, 폐암, 간암의 순서로 나타났다. 그러나 암 사망률(인구 10만 명당)에 따른 3대 악성종양은 폐암(33.1명), 간암(22.5명), 위암(18.6명)으로 나타났다. 이 3종류의 암이 사망률에 따른 3대 악성종양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 주변에도 이러한 악성종양이 존재한다. 이러한 변이로 생긴 이러한 악성종양들은 더욱 견고한 진리를 붙잡음으로, 만물의 으뜸이시자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붙어 있을 때 물리치고 치료할 수 있다. 골로새서 2장은 기독교의 주변에 그리스도의 우월성이나 하나님으로서 초월성을 훼손시키고자 하는 3대 악성종양들을 소개해 주고 있다.
1. 더 많은 지식[영지주의](2:1~11)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이르는 길, 진리, 생명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들은 그리스도의 충분성을 부정하며 무언가 특별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이 잘 알지 못하는 깊이 있는 지식이 있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단들이 교회를 흔들고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할 때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들은 교회에서나 목회자들로부터 잘 가르쳐지지 않는 성경의 특정한 부분을 골라 마치 새로운 지식을 깨달은 것처럼 말하며 아직 믿음이 연약한 그리스도인을 강탈하거나 납치해 간다. (바울은 골 2:8절에서 “사로잡혀”란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 단어는 ‘술라고게오’ 란 단어로 포로나 그 밖에 전리품을 끌고 가는 것을 지칭한다)
아우구스티누스 “당신이 이해할 수 있다면 그분은 이미 하나님이 아니다”라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이나 지식으로 다가갈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셔야만 이해할 수 있는 분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지식이나 이성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다는 논리로 다가오는 철학과 이론이 헛된 속임수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지식을 주장하는 이단들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자 하는 접근방식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을 통해 충분한 지식을 계시하셨다.
2. 더 많은 규칙[율법주의](2:11~17)
유대인들은 출애굽기~신명기에 나타나는 율법을 613개로 집대성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 행해야 할 삶의 규범들을 정했다. '하라'는 의미의 248개[사람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부분의 총합]와 '하지 말라' 365개[1년을 의미]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더욱 가까워 졌는가? 더 알게 되었는가? 에 대한 질문에는 의문점이 많이 남는다. 율법은 타락한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더욱 선명하게 해 줄 뿐이다. 더 많은 규칙이나 율법은 우리의 실체를 깨닫게 하고 이러한 우리의 한계를 향한 하나님의 개입을 간절히 사모하게 하는 것이다.
존 맥아더 목사는 인간의 행위를 말하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말한다. 규칙을 더하고 그 규칙을 준수함으로 괜찮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에 따른 선한 행위로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다는 거짓 속임수에 속지 마라.
3. 더 많은 체험[신비/금욕주의](2:18~23)
크리스천으로서 7년간 자전거로 세계 일주를 한 문종성 씨는 “모든 곳에 주님이 계셨다”는 고백과 함께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준다.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주신 복을 기뻐하는가? 하나님 자체를 기뻐하는가? 의지할 게 아무것도 없는 그 순간이 하나님과 가장 선명하게 교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아주 분명하다. 우리의 삶과 믿음이 하나님 주변에 있는 것들이 아닌 하나님께, 그리스도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함을 가르쳐 준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이야기한다. 많은 기적을 경험하고,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영성의 높은 수준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려는 사람들(요 4:48)이 연출하는 영성이다. 이러한 거짓 연출가들에 의해 들려지는 내가 체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에 사람들의 미혹에 쉽게 넘어가 왜곡된 진리와 신앙에 빠지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
오히려 성경은 신앙의 성숙을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히 5:14). 성령의 일하심 속에 신비한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일치하는지 분별해야 한다. 신앙의 삶의 여정 속에 자기 부인을 통한 금욕으로 자기를 이끌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아가도록 하는 것이어야지 그것이 구원의 방편이나 더 나은 성도의 기준이라는 생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에게 더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다. 더 엄격한 규칙도 필요하다. 더 깊은 체험과 절제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가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로 우리를 가까이 이끄는 것들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우리를 해하는 악성종양으로 변이될 것이다. 이러한 악성종양들은 오직 길과 진리 생명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거부하며 하나님께 이르는 다른 길이 있다고 주장하려는 인간의 교만과 음흉한 의도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