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구원받은 이들이 모인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이들의 공동체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대사관으로서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잃은 자를 찾으러 이 땅에 오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갈릴리 온 지역을 두루 다니셨던 주님처럼 늘 잃어버린 자들을 향한 끊임없는 관심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우연히, 혹은 누군가의 초청으로 교회 안에 발을 들여놓은 비신자들로 하여금 그것이 마지막 발걸음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첫 발걸음이 되도록 하는 것에 지도자와 성도들은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비신자들의 관심이 늘고 그들이 다니고 싶어하는 교회를 세워갈 수 있을까?
우선은 교회가 성도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시지를 더 잘 준비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인들이 나란히 설교를 듣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양쪽 청중을 모두 끌어들여 귀를 기울이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혹시 당신은 주일 설교에 접근할 때 마치 교회 안에 비신자가 없는 것처럼 접근하거나, 마치 모든 출석자가 신자이며 매주 나오고 있는 것처럼 설교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진 않은가? 혹시 주일의 메시지로 비신자들을 끌어들인다는 것을 본문을 희석하거나 건너뛰거나 가볍게 넘어가는 것이라 선을 긋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중의 청중, 하나의 메시지”를 통해 본질은 깊고 영향력은 넓은 교회를 통해 복음의 영향력을 확장해 가는 노스포인트 교회의 앤디 스탠리 목사의 설교에 대한 철학과 조언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그가 나누고자 하는 이중의 청중을 위한 설교의 7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그들이 와 있는 것을 당신이 알고 있음을 알려주라.
그들이 와서 당신과 교회가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주일 설교를 통해 비신자들을 끌어들이는 열쇠는 그들을 안에 넣어주는 것이다. 그들에게 자신이 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두 번째, 청중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라.
곧장 메시지로 들어가지 마라. 훌륭한 설교자는 사람들을 여정으로 데려간다. 출석한 비신자들이 따라오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평소에 시작하던 자리에서 몇 걸음 뒤로 물러나야 할 수 있다. 우리와 비신자들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훨씬 많다.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 번째, 본문을 하나만 골라 거기에 충실하라
성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성경에 겁을 먹는다. 그러므로 아무도 성경에 겁을 먹지 않도록 성경에 더 접근하기 쉽게 해주어야 한다. 설교 중에 성경을 두루 섭렵하는 당신이 얼마나 똑똑한지는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성경에 대한 청중의 이해나 호감을 깊어지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성경이 스스로 말하도록 하며 하나의 본문을 골라 거기에 충실하라.
네 번째, 믿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라.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라. 신약성경에 나오는 명령문들의 대상은 그리스도인들이다. 비신자들은 반가운 손님이다. 교회를 방문 중인 그들에게 기대해서는 안 될 일들이 있다. 또한 그들에게 그렇다고 말해주어야 한다. 비신자들에게 빠져나갈 길을 주면 그들은 오히려 안쪽으로 기운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기대보다는 한번 해보라는 초대로 접근하라. 그리스도인처럼 한번 살아보라든지, 방금 살펴본 원리들을 적용해보라든지, 성경에 제시된 새로운 사고방식을 택해보라고 초청한다. 그들에게 뭔가를 기대하기보다 그들을 초청하며 그들을 해방해주면 그들의 반응은 당신의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다섯번 째,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라는 말을 삼가라
엄밀히 말해서 이 표현은 틀린 것이다.(참고로 저자는 성경의 무오성을 철저히 믿는다) 이것은 단순히 성경을 한 낱 책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책이 아니다. 책보다 훨씬 좋은 것이다. 40여 명의 자자가 약 1,500년에 걸쳐 기록한 문서들을 모은 것으로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성경’이 아니라 저자를 인용하라. ‘책’에 대한 가정에 기초하지 말고, 수많은 목격담 생생한 증언을 기초로 하라는 것이다. ‘성경’이란 말 대신 ‘마태’, ‘마가’, ‘누가’, ‘요한, 그리고 ‘바울’ 등과 같은 저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성경의 신빙성과 신뢰성을 보여주며 확고한 변증을 하라는 것이다.
여섯번 째, 이상한 부분은 이상하다고 인정하라
인정하지 안는 게 더 이상하다. 믿기 어려운 것은 믿기 어렵다고 말해주면 된다. 비신자들에게 들 것 같은 생각을 대신 말해주라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말에 신빙성이 생긴다. 그들은 그들대로 운신의 폭이 생긴다. 메시지는 이로써 전달되는 것이 있다. 당신도 그들처럼 이성적 존재이고, 들어올 대 문간에 뇌를 맡기지 않았으며, 그들에게도 그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성경을 비판적으로 읽어도 된다는 사실이다. 성경을 아직 믿지 않는 사람도 얼마든지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일곱번 째, 신비주의로 흐르지 마라
주일 예배는 신앙으로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이나 처음 신앙을 탐색하는 사람들에게 교량 역할을 해야 한다. 당신이 고도의 카리스마적인 교회에 있다 해도 신비주의를 멀리하라. 당신은 그런 식으로 살지 않는다. 비신자들도 그런 식으로 살지 않는다. 신비주의는 도리어 당신과 청중 사이를 멀어지게 할 뿐이다. 신비주의는 당신이 우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당신은 청중이 감히 꿈꿀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과 더 가깝다. 그러므로 당신은 신비감을 조성한다! 신비감이 있는 곳에는 두려움도 따라온다. 그래서 당신이 조종석에 앉게 된다.
물론 앤디 목사의 철학이 모든 설교와 설교자에게 정답일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신이 이중의 청중들을 향한 메시지 전달을 고민하고 있다면 앤디의 조언이 당신의 생각과 고민을 더 깊게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위의 글은 앤디 스탠리, 『 노스포인트 교회 이야기 』, [도서출판 디모데] 를 일부 발췌 요약 수정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