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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연합의 원리 [사람을 세우는 사람 233호]
   조회수 392
2019-09-10 17:15:44

등록일 : 2013/09/10 16:29




그리스도인의 연합의 원리

1.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현재의 선물이자 미래의 목표다.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교회 연합과도 다르고 그리스도인의 교제와도 다르다. 요컨대 그리스도인의 연합이란 단순히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살아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 안에 살아 있고 그분의 지배를 받는 상태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는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예루살렘(히 12:22) 에 있는 과거의 그리스도인들과 오늘 우리와 함께 지상에 있는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포함된다.
  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분과 하나이듯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 서로 하나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이란 아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신자를 의미한다. 즉, 거듭났고, 그리스도를 알며,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랑하며 살고자 애쓰는 신자다.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고백하는 능동적인 하나 됨이다. 그들은 구주의 사랑 안에서 초자연적 생명을 공유하며, 인종과 피부색과 사회 계층과 교단 등의 모든 벽을 넘어 서로 사랑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의 연합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천국의 맛보기다. 또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2. 그리스도인의 연합의 근거는 계시된 진리에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생각과 발언이 진리의 절대 기준이다.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2천년 전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시대에 이르는 장구한 구속사 동안, 하나님은 구속과 구속받은 삶의 실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투명하게 계시하셨다.
  이 계시가 성경 정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세대가 하나님의 행동과 발언을 정확히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성경을 감화하셨다. 그렇게 계시되고 기록된 내용이 지금 인간의 모든 사상과 문화적 합의를 지배하는 기준이다. 그것들이 얼마나 참이거나 거짓인지 측정하는 잣대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성경의 성격을 변질시켜, 성경을 의도도 좋고 종교적 통찰도 있지만 사실성을 믿을 수 없는 인간 전통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성경의 판단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성경의 진리와 지혜를 판단할 권리가 있는 듯 행세한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증진시키는게 아니라 오히려 방해하며, 그 과정에서 굉장한 혼란과 엄청난 영적 혼미함을 야기한다.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은 변론을 즐기거나 조장할 게 아니라 그런 지적인 방법과 그 결과가 잘못임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 나아가 이런 변질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부디 그렇게 해주시기를 빈다) 그것을 계속해서 밝혀야 한다.

3. 개인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이루려면 그리스도인의 소망을 확실하게 공유해야 하고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원칙대로 실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진리 안에서 연합하는데, 미래의 소망도 그 진리의 일부다.
그 소망을 함께 고대하는 일 자체가 연합의 끈이다.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중시하는 사람들과 방해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는데,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논재로 떠오르면 그 간극은 더욱 극명해진다.
  이 세상을 변화시킬 전망은 다채롭고 화려하게 제시되는 반면, 천국의 기쁨을 향한 소망은 한낱 도피주의로 일축되기 때문이다. C.S. 루이스가 지혜롭게 지적했듯이, 천국을 가장 사모하는 사람들이 대개 이 땅에서 가장 유용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이 서로 사랑하는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연합의 한 표현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에 말씀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신 인생의 이상적 기준에 비추어, 그 사랑을 책임감 있게 실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 또한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하나님께 합당한 행동의 선을 지키지 않고 무조건 준다면 이는 기독교적 사랑의 실천이 아니다. 절제, 정서적 성숙, 용기, 겸손, 인내, 진실성, 신뢰성, 정결함, 거룩함 등 전반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을 간접적으로라도 독려하고 그쪽으로 돕지 않으면서, 무조건 주기만 하는 것을 사랑이 아니다. 도덕적 둔감성과 무관심은 기독교적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랑을 말살한다. 상대가 누구이든 그의 잘못을 더욱 굳어지게 하는 것은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이 아니며, 상대가 동료 그리스도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하며 호의를 보인다는 의미에서 무조건적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항상 기독교의 기준을 고수한다.


4.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교회 생활에서 실천하려면 모든 차원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나누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생활의 실체는 지역교회를 통해 만인에게 가시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지역교회에 요구되는 것이 다음과 같다. 
  첫째,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죄로 비뚤어진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에게 고집 세고 완고하고 미련해 보일 때가 있다. 실제로 그런 모습이 될 때도 있다. 어떤 공동체, 가정, 교회, 모임, 단체를 막론하고 계속 호의를 품고 함께 지내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도 그리스도 안의 공동생활에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애정 어린 화합이다.
  둘째, 교제를 실천해야 한다. 신약성경에서 쓰이는 교제(헬라어는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는 서로 나누고 돕는다는 뜻이다. 교제란 내가 하나님께 받은 것을 돌봄과 도움의 선물로 당신에게 전하고, 당신도 똑같은 반응으로 돌봄과 도움의 선물을 내게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공유한 결속과 유익은 각자가 처음에 가졌던 것보다 많아진다.
셋째, 교회들 간에 서로 도와야 한다. 교회들이 서로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된 존재로 본다면, 마땅히 서로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구체적인 방법은 지역교회의 필요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빈곤에 처하자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들로부터 구제 헌금을 모았다. 그 교회들은 주로 이방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는 이런 나눔을 그리스도 안의 연합의 표출이자 그리스도께 대한 감사의 표출로 보고 중요한 일로 여겼다(참조 행24:17, 롬 15:25-28, 고전 16:14, 고후 8-9장). 이런 식의 동역과 도움은 연합을 드러내주고, 복음을 증진시키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위의 글은 도서출판 디모데의 신간인 J. I. 패커 저, 『하나님께 진지하라 』 에서 부분 발췌 및 요약 수정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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