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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세우는 사람 165호] 소비사회에서의 목회
   조회수 240
2019-09-10 13:54:14

등록일 : 2012/01/31 17:14







소비사회에서의 목회

세인트 루이스 대학의 철학 교수인 존 F. 캐버너는 『소비사회를 사는 그리스도인』(IVP 출판)에서 소비사회의 특징을 5가지로 정리해 준다. 첫째, 멋있어 보이는 겉모습만을 추구하도록 자극받음으로 말미암아 소비하는 자아의 가면 뒤에 숨겨진 내적 공허함. 둘째, 단순한 소비자로 전락되어 내면의 가치 상실로 인하여 발생하는 다른 사람과의 깨어진 관계. 셋째, 맘모니즘 우상의 노예로 전락하여 발생하는 물질에 대한 갈망. 넷째, 내적인 인격의 상실과 자기 파괴적인 소비와 생산에 몰두함으로 발생하는 비인간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락과 물건들, 생산성과 실용성에 사로잡혀 진짜 도움이 필요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서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캐버너 교수의 지적은 상품 형식이 신이자 복음이 되어버린 이 시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소비사회의 한 복판에 서 있는 현대 교회와 영적 지도자들이 캐버너 교수가 말하고 있는 5가지 특징을 깊이 생각하며 고민한다면 이 시대가 낳은 거대한 소비사회의 조류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 대안과 해법을 제시하는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소비사회에서의 원론적인 목회 전략 5가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내적 공허함의 시대에서 내면을 부요케 하는 목회

베드로 사도는 부부를 향한 권면을 다음과 같이 준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서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

이 말씀이 어찌 아내만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상품 형식이 하나의 신이자 복음이 되어버린 이 소비사회의 한가운데 서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한 메시지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겉모습과 형식의 화려함만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그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이 부요하고 화려한? 공동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복음으로 내면을 부요케 하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의 부유하심을 가슴에 한 껏 안고 살아가도록 하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 복음이야 말로 천하만물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부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깨어진 관계의 시대에서 관계를 세워가는 목회

소비사회의 한가운데 있는 교회 역시 이러한 문화의 강한 영향력에 물든 사람들에게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거대한 조류를 거슬러 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대기업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동네 골목까지 막무가내 상권을 장악해 가는 현실이 한국 교계에서는 벌어지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큰 교회가 작은 교회의 생존을 위협한다거나, 작은 교회는 큰 교회의 거대한 물리적 위협을 탓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크고 작음을 떠나 소비사회 속에 있는 우리 모두가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고 가르치며, 성도와 성도 간에, 성도와 믿지 않는 사람들 간에 복음의 진리 위에 건강한 관계를 세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성도가 사람들에게서 고립되는 것이 아닌(교회와 성도가 고립되는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진리의 배타성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교회가 있기에, 성도가 있기에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고 치유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는 물론이고 세상 속에서도 말이다.

물질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 시대에서 청지기직을 바르게 가르치는 목회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6:24), 물질을 섬기기까지 할 수 있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경계하셨다. 그렇다. 사람들은 물질을 섬길 수 있다. 이것이 소비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지금 들려오는 각종 비리, 폭력, 거짓, 하물며 교육까지 그 배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더 갖고 더 누리기 위해 여러 명분을 내세워 탐욕을 추구하도록 사단은 조장하고 있다. 사람들이 속고 있다. 성도들이 속고 있다. 물질은 통제될 때 선한 것으로 선용될 수 있는 것이지, 사람들이 물질에 통제를 당할 때 그것은 오히려 각종 악을 생산해 내는 통로가 된다. 물질은 소유를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관리를 위해 맡겨진 것이다. 성도와 교회 공동체가 이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맡겨진 것을 잘 관리하는 청지기적 가치관만 이해해도 우리의 삶에는 참으로 많은 실제적 변화가 따라올 것이다. 물질에 영혼을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

비인간화의 시대에서 사람의 가치를 회복하는 목회

사람들의 인격이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다. 특별히 다음 세대들의 인격성이 소비사회의 이기심에 심하게 노출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람들의 가치는 소비사회가 만들어낸 소비재들을 소비하는 소비자일 뿐이다. 사람은 많고 적음, 높고 낮음을 떠나 인간의 인격 그 자체를 가지고 판단을 하고 받아야 한다. 27()자 모 일간 신문에서 “경차 탄다고 거지 아닙니다”란 헤드라인과 함께 손세차장에서 무시당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을 보았다. 무시를 하는 사람이나 무시를 당한 사람 모두 소비사회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넣어놓으신 하나님의 형상을 바라보시며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신다. 그 존귀함을 포기하실 수 없었기에 하나님이 직접 육신을 입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가치를 회복하시고 증명해 주셨다. 교회 공동체의 참된 가치는 얼마나 큰 규모의 회중이냐, 예산이냐, 건물이냐가 아니다. 교회 공동체와 목회가 소비사회와 동일한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있다면 창조주가 희생하시면서까지 회복하고자 했던 사람의 가치에 대한 중요성은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교회의 가치는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됨의 가치를 회복한 사람들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사람들의 영적 회복을 위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며 성경적 가치관을 실현해 가느냐와 연관되어 있다. 목회의 본질은 사람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에게서 도피하는 시대에서 지역 사회와 함께 가는 목회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지역에 기쁨이 되어야 한다. 그 지역에서 교회가 사라지는 것이 그 지역에 안타까움이 되어야 한다. 지역에 세워진 교회가 그 지역과 함께 공존하지 못한다면, 교회가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허무한 외침에 불과할 것이다. 영적 지도자인 우리는 성도를 향하여 세상 한가운데 파송된 평신도 선교사라고 가르치지 않는가?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사는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가르치고 있다. 교회는 세상 한가운데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지역 사회 한가운데서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실 선한 열매를 맺고, 그 열매의 유익 때문에 지역 사회가 함께 기뻐하는 일이 많이 생겨야 한다. 한국 사회에 이슈가 되고 있는 무상 급식, 반값 등록금, 노인 복지 등의 현안이 있다. 법과 제도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 대한 적지 않은 대안을 지역 사회와 함께 가는 목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눈길을 돌리면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가 지역과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첨부파일165.jpg (689.4KB)2012-01-27_165.doc (29.5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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