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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세우는 사람 167호] 그리스도인, 착하고 충성된 노예
   조회수 423
2019-09-10 14:00:15

등록일 : 2012/02/14 14:37






그리스도인, 착하고 충성스러운 노예

수님의 제자들은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더 나아가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관계를 지칭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그 관계는 어떠한 관계인가? 주인 되신 그리스도와 그의 종인 우리의 관계를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서 노예 상태를 물려받아, 죄악의 노예로 살아가던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엄청난 값을 치르고 산 후 자신의 노예로 삼아 주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노예가 된 자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주인을 뒤따르고 그 명령에 순종할 책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순종의 책무에 소홀한 그리스도인이 늘어가고 있다. 항상 그 시대의 문화를 거스르는 말씀의 진리와 그 가르침에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도란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명령에 자발적 순종의 삶을 통해 오직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삶의 방식을 사는 자이다. 자신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관점을 받아들이며,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기쁘게 섬기라는 부르심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이러한 부르심을 우리는 늘 고민하며 삶으로 나타내야 한다.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는 자신의 저서 『슬레이브(국제제자훈련원)에서 성경적인 기독교 신앙과 1세기 노예 제도 사이의 5가지 공통점을 제시하며 흐트러진 우리의 삶에 경종을 울려 주고 있다. 5가지의 특징과 우리의 삶의 거리감을 측정해 보길 바란다.

전적인 소유권

로마법은 노예를 주인의 완전한 소유물로 간주한다. 신약성경은 신자들이 죄악에 속해 있던 과거와 그리스도와 맺은 현재의 관계를 모두 설명하기 위해 노예라는 주제를 사용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 5:24)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에 상전”( 4:1)으로 예배하는 무리에 동참하게 되어 “자기 백성”( 2:14)의 일부분이 된 것이다. 1세기의 노예들이 이 땅의 주인에게서 새 이름을 받았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그리스도에게서 새로운 이름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그분의 독점적인 소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복종

노예란 주인에게 항상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의 유일한 의무는 주인의 요청을 수행하는 것이다. 노예는 주인의 말 외에는 그 어떤 법도 알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완전히 주인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도 성도에게 반복적으로 주인에게 신실하게 복종하라고 요청한다. 주님의 노예로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함”(벧전 1:2),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림”( 12:1),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요일 3:22)이 요구된다. 그리스도의 소유가 되었다고 선포하면서 불순종하는 사람은 자신이 노예 신분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사람을 향하여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요일 1:6)라고 했다.

오직 헌신

노예의 삶은 어려웠을지라도 그 자체는 단순했다. 주인의 뜻을 수행하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명령에 순종하며, 명령이 없는 영역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능력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주인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한다. 성경적 기독교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만 철저하게 헌신한다. 하나님 외에 다른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12:30).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인은 “그 앞에 즐거운 것을”( 13:21) 행해야만 한다.

전적 의존

노예는 주인의 가족 구성원 일부가 되어 음식과 보금자리를 포함한 삶의 기초적인 수단을 주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다. 노예는 먹을 것이나 잠잘 곳을 찾느라 염려할 필요가 없었기에 주인을 섬기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을 신뢰하면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 모든 것을 준행하는 데 집중하는 자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자신의 최우선순위로 삼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개인적인 책무

노예는 소유주 앞에서 자신이 수행한 모든 일에 주인의 평가에 따라 책임을 져야 했다. 주인이 만족한다면 그에 따른 유익을 얻기도 했고 궁극적인 해방이나 자유까지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인이 만족하지 않는다면 매질까지 당할 만큼 강한, 그에 합당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보상과 체벌 체계는 노예가 일을 열심히 잘 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자극이었다.

그리스도인도 언젠가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되어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에 동기부여를 받는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대부분 노예였던 초대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바울은 이 땅의 주인을 섬기면서 궁극적으로 주님을 섬긴다는 사실을 생각하라고 그들을 격려했다. 하늘에 계신 주인을 기억하는 것은 노예이든 자유인이든 상관없이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력한 힘이 되었다.

노예의 삶은 자신이 아닌 주인의 영광과 유익을 위해 존재한다. 주인의 영광이 드러나고, 주인의 유익의 풍성함 속에서 함께 풍성함을 누리는 자이다. 그러므로 노예가 추구하는 삶은 이기적일 수 없다. 자신의 삶을 위해 주어진 삶의 기회를 소비하는 노예는 도리어 궁핍하게 될 것이고 주인의 영광과 유익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인간의 문화 속에 존재하는 노예의 인식은 “비참함”이라는 단어를 상기시킬 수 있겠지만,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영광을 생각한다면 노예라도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의 본질을 묵상하는 기회로 삼자.

 
첨부파일167.jpg (689KB)2012_02_14_그리스도인_착하고_충성스러운_노예.doc (31.5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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