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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존재하는 위선 [제 730호]
   조회수 108
2023-10-24 10:45:24


 

내가 아는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보다 더 난잡하게 살아.” “아버지는 교회 집사였는데 엄마를 속였어.” “자칭 그리스도인이라는 그 사람은 내가 아는 불신자들보다 더 추잡하게 사업을 해.” 

이런 말들이 익숙하지 않은가? 이 말들은 모두가 싫어하는 위선을 지적하는데, 이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다. 교회 안의 위선자들은 기독교를 집중적인 비난의 표적으로 만드는 일등 공신이다.

사람들은 교회가 보이는 위선에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지만 그들이 교회를 외면하도록, 때로는 영원히 외면하도록 단초를 제공한다. 우리 모두 기독교적 위선을 경험했고, 또 우리 자신이 그 일부였을 수 있으므로 이런 심각한 문제는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이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님도 위선을 미워하신다. 주님은 가혹할 정도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설을 날리시고 그들을 위선자로 거듭 비판하셨다. 우리에게도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네 눈 속에 들보가 있을 때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지적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로마서 2 3절과 같은 성경본문은 위선을 이렇게 정죄한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예수님이 위선을 미워하신다면 기독교 역시 당연히 위선을 권장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교회에 왜 여전히 위선이 팽배한가?


첫째, 교회에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이 심지어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이 다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단순히 부모나 남편 혹은 아내나 친구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리스도인인 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 교회에서 맛볼 수 있는 교제와 관계가 좋아서 신앙인 행세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믿음에 대해 전혀 확신하지 못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또한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믿지만 실제로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721절에서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 중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있지만 실제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두렵다. 그러므로 혹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에게 큰 손해를 입었다 해도 그는 실제로 허울만 그리스도인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 위선이 팽배한 이유는 때로 우리가 만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전혀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다는 간단한 대답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주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일일이 판단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을 하나님과 자신을 관계를 되돌아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

 

둘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위선자이다.

교회에 위선자가 있는 다른 중요한 이유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위선자이기 때문이다.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위선자를 스스로 공언한 신념이나 느낌과 모순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정의에 부합한다.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부르신 온전한 삶”(5:48)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매일 죄를 짓는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죄인이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위선자이다.

경건하게 살고자 노력한다 해도 위선자라 불릴 위험에서 면제되지는 않는다. 나아지는 면이 있다고 해도 계속 넘어지고 실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이 좌절하는 이유는 덕망이 있는 척 혹은 신앙심이 깊은 척 거짓으로 포장하는 사람이라는 위선자를 설명하는 두 번째 정의와 연관이 있다. 한 점 흠도 없이 깨끗한 척하면서 조금이라도 미숙하고 서투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비판하는 이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이것은 신약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묘사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가? 당연히 그렇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정도는 달라도 위선적인 모습이 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위선자들을 만날 경우 기독교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겠는가?

병원에 갔을 때 곳곳에 환자들이 보인다고 놀라는 사람은 없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여전히 중병에 걸려 있다. 다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상태에서 교회를 찾았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완벽한 상태를 기준으로 비교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인이 되기전의 상태를 기준으로 얼마나 나아졌는지 비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상하고 다친 사람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천천히 회복되어가는 경험을 하는 곳이 교회다.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사람들과 위선적인 사람들을 교회에서 본다고 놀라거나 충격을 받는다면 기대치를 낮추어야 할 것이다.

교회 안에서 위선자를 볼 때 그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결단하고, 하나님을 외면하는 대신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간구하는 태도가 더 온전하고 타당한 반응이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이며 그분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위의 글은 클린턴 E. 아놀드 & 제프 아놀드, 기독교 신앙에 대한 난감한 질문 명쾌한 대답 (도서출판 디모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첨부파일2023-10-24_교회에 존재하는 위선.docx (16.2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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