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롬 8장 1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말씀한다. 즉 죄를 처단함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자유를 얻게 되며, 영적 해방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죄에서 자유로움은 어떻게 얻게 되는가? 바로 예수님 안에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렇다. ‘예수님 안에 있다’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그의 영역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결국,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죄의 심판을 주시지 않는다. 영적 사망도 주시지도 않는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를 향한 사랑의 증거인 것이다. 이 은혜를 입고 사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그의 약속은 예수님 안에 있는 자에게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으신다신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끼리 정죄하며 살아간다. 더더욱 안타까운 모습은 세상에서의 모습은 참으로 관대하다(개인의 손익 계산이 확실해서 그런가?). 그런데 교회 안에서 함께 있는 이들끼리는 지적하기 바쁘고, 정죄하기 바쁘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가 아니다. 예수님은 용서하셨다. 품으셨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의 모습은 용서하며 품는 것이다. 은혜를 얻은 자들이 은혜를 나누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복과 은혜가 나에게서 멈춘다. 누군가에게 가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사는 모두가 예수님 안에 살기를 원하신다. 죄와 사망의 법에 사는 이들이 속히 성령의 법의 지배를 받고 살기를 원하신다. 예수님 안에 있는 자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분명 성령의 법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살게 되면 성령의 법이 새 생명을 주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며, 영적 자유가 보장된다. 이것이 복음의 원리인 것이다. 복음의 원리로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예수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 이제는 삶의 방식도 바뀐다. 이 삶은 결코 노력으로 얻으려는 삶이 아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자들의 삶은 이미 얻은 삶을 나누어 주는 삶이다. 예수님 안에 사는 자들은 이미 얻은 은혜와 축복을 나누기에 함께하는 이들을 예수님으로 인해 기쁘게 한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 사는 자들을 통해 예수님 그리스도를 발견케 한다. 왜냐하면, 그가 바라보는 눈에 예수님의 사랑의 눈빛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섬기는 손에 예수님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사랑의 언어가 예수님 그리스도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 전체에 예수님의 향기가 나기 때문이다.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분명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멋진 인생을 꿈꾸는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라. 죄에서 속히 도망 나와 예수님 안으로 달려 들어오라. 예수님 안에 사는 인생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